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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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55회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1.0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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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코리아 지도자회 이사장 문경주=시멘트 철근 판유리 공장 건설도 시급하지만 그 보다 더 급한 것은 식량을 증산하는 것입니다. 그 사업을 하자면 작물을 가꿔야 할 비료공장 또한 절실했지요. 따라서 미국이 주도하여 각국에 대한민국 경제개발지원을 요구하여 헌금 또는 물자를 기부해주도록 종용했고. 그 결과 여러 나라가 참여하여 공장 플랜트시설 등을 지원했습니다. 그 재원은 무상 또는 거의 공짜에 가까운 차관 형태로 강원도 지역에 삼척시멘트공장을 재건축했고, 문경시멘트공장과 인천 판유리공장을 지어주었으며, 전력 증강 사업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농촌 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비료 공장에 이어 저수지 축조 및 농업용수로 개수사업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밀을 수입하여 제분에서부터 군사용 건빵까지 만들 수 있는 동립산업(東立産業)이라는 거대한 자동화 공장을 영등포구 문래동에 지어 주었습니다. 군사 쿠데타를 감행하기 이전인 1961년 5월 16일까지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을 외국이 직접 지어 준 것만으로도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삼척 시멘트공장: 1942년 일본이 지었으나, 6·25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어 1956년 미국의 무상원조로 재건축했지요. 인천 판유리 공장은 단기4290년10월 1일 준공(서기 1957년). 미화 3,628,759$(한화로 약 600,507,000원)의 자금은 UNKRA(국제연합 한국재건단체)의 원조로 지어졌습니다.

충주 비료공장 지원 1957년. 문경 시멘트공장 1957년 덴마크 스미스 회사가 제공 890만 불(한화 20억 원) 등등 만약 이런 공장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아파트, 고속도로, 건설 등의 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하여 경제개발에 아주 큰 차질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멘트 및 판유리는 건설업의 필수 자재로서 수입해 오자면 막대한 수송비 등이 소요 되고 국내에 항만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판유리 등은 하역이 아예 곤란할 뿐 아니라 파손이 우려되고 배 안에 싣고 온 시멘트를 끄집어내기 위해 어깨로 메어 날라야 하는 상황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강 노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경제개발 건설의 기본 재료가 되는 시멘트공장과 판유리공장을 먼저 지었던 겁니다.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개발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산업시설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오직 가짜영웅 박정희 영도력에 의해 우리나라가 발전되었다고 2019년 현재까지도 선전하는 특정세력들이 있으며, 대한민국 국민 90% 이상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가짜영웅 박정희 사후 몇 단계를 거쳐 민주정권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지만, 대한민국 국민 90% 이상이 영웅주의 착각에 빠져있어 그 실체를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면, 가짜영웅 박정희가 세계적인 지도자로 믿고 있는 세뇌당한 독재 잔당 지지자들이 사생결단으로 난동을 부릴 것을 염려하여 그 들의 거짓 선전을 동의하는 척 묵인하여 타협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미국의 원조는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시켜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북한은 물론 소련의 공산화 획책을 막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 필수 건재용 물품 공장 건설에 이어서, 전력증강사업, 아파트 등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경제건설 기반을 착착 진행해 오던 중에 5·16쿠데타가 발생하여 경제개발이 잠시 후퇴했으며 미국의 원조가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그로인하여 상당한 국민들이 굶어죽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때문에 근 1~2년간 경제성장 동력이 감소하거나 끊겨 오히려 발전이 미흡하거나 늦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개발 주도국인 미국은 1960년1월에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의 참모들인 Robert Mcnamara. Walts Rostow. Mcgeoge bundy 등 3인이 주축이 되어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공산주의의 팽창에 대하여 연구 분석한 결과, 소련은 가난한 국가들을 골라 집중적인 공작으로 사회 불안을 조성하여 공산화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던 겁니다. 이에 따라 케네디 대통령은 이른바 친미국가 개발전략으로 통칭하는 내이션 빌딩(Nations Building)이란 정책을 1960년 1월 20일 성명으로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경제개발은 케네디 대통령이 부르짖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성명서 요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전 세계 절반의 국민들을 집단적 가난의 사슬에서 벗어나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을 맹세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계속하여 도울 것입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무작정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이와 같은 연설은 표면상 전 세계의 가난한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인식되지만, 사실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특정 국가들을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한 미국 대사 매카네기에게 긴급 훈령하여 한국의 경제개발계획도 수립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그 시행과 모든 지휘책임을 미국 대사가 전적으로 가지지만,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비밀에 부쳐 추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민주당의 장면 정부가 추진했던 경제개발정책 시행을 발표한 1961년 5월 15일 그다음 날 5·16쿠데타를 일으켜 이 계획은 무려 1년여 기간이나 표류하다가 196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56 회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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