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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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65회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3.0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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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통일코리아 지도자회 이사장 문경주=5·16 군사쿠데타의 소용돌이에 잠겨 버린 서독광부 파견 문제는 그렇게 한동안 잊혀지는듯하다가, 쿠데타 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 날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비록 민주당 정권을 찬탈한 가짜영웅 박정희일지라도, 민주당 정권에서 합의한 서독 광부 파견에 관한 건을 계승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자, 가짜영웅 박정희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서둘지는 않았습니다. 계속 늑장을 부리면서 신문에 광부 모집광고를 내는 등 희망자들을 모으기는 했으나 결행까지는 무려 2년여나, 미루었고, 그에 대해 불평불만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봤었습니다. 또한, 그 파견 광부를 선발하는 데도, 희망자가 많아지자, 광부도 아닌 사람이 광부라고 속이기 위해 탄광에 가서 몇 달 동안 일하고 오도록 하는 등의 부정행위도 더러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하여 1963년 12월 21일 처음으로 123명의 광부가 제 일진으로 서독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인 간호사들이 서독에 취업 여성으로 간 것은 1966년부터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이전까지는 서독정부가 공식적으로 외국 간호사 수입을 허가하지 않았으므로 그때야 공식적으로 파송되었고, 불법취업 형태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한둘씩 서독에 취업한 것은 1957년경을 전후하여 서독에서 온 선교사들에 의해 동행방문 형태로 데려다가 서독의 병원에 은밀하게 취직시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으며 간호사가 아니라, 간병인 수준으로 대우받았으며, 심지어는 시체 닦는 일까지도 감당해야 하는 불법취업자로 숨 죽여 근무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발로부터 서독정부의 간호사 수입이 공식적으로 허가되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1만 226명이나 서독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가짜영웅 박정희가 국가재건 최고회의장 자격으로 서독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61년 12월 8일입니다. 그런데도 가짜영웅 박정희 지지자들은 국민을 세뇌할 목적에서인지, 제멋대로 한국 간호사 취업 시기를 조작하여 1961년 12월에 한국 간호사와 광부들은 이미 서독에 취업하고 있었던 것처럼 상황에 맞도록 거짓을 꾸며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1961년 박정희 최고회의장이 서독에 간 시기로부터 광부는 무려 2년, 간호사는 5년 후에나 서독에 취업할 근로자들의 월급을 담보로 1억 5천만 마르크의 차관을 얻어왔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합니다. 서독파견 광부와 간호사 월급을 담보로 차관을 얻어왔다는 가짜영웅 박정희 잔당들의 주장은 박정희 정권사기의 극치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굶어 죽게 된 대한민국 국민을 먹여 살리겠다는 구국적(救國的) 애민(愛民)정신으로 서독정부 당국자들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서독정부를 설득시켜 차관을 얻어왔다며 마구 거짓말을 해대는 것입니다. 서독으로부터 얻어온 차관이야말로 가짜영웅 박정희에 탁월한 영도력의 결정체란 요지의 글들을 인터넷에 올려, 그것을 읽은 수많은 사람을 박정희 영웅담에 매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독자 중에는 그런 글을 읽고 눈이 퉁퉁 붓도록 엉엉 울었다는 노인이 많습니다. 가짜영웅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서독에 갔을 당시에 울부짖던 간호사들이 있었다는 사진 자료는 선교단체들을 통하여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몇몇씩 서독으로 건너가서, 각기 개인병원에 취업하여 갖은 서러움을 당하느라 피눈물 쏟아가며 일하고 있던 한국의 어린 딸들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가짜영웅 박정희가 서독에 가서 근로자들을 만난 것은 1961년 첫 번째 방문이 아니라, 1964년 두 번째 방문 때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1961년 처음 방문하여 차관을 얻어올 때 근로자들 월급을 담보로 했다고 조작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1964년이라 해도 아직은 한국정부가 공식파견한 간호사들이 서독에 오기 2년 전입니다. 그 당시엔 서독정부가 외국 간호사 취업을 허가하기 2년 전입니다. 따라서 서독 간호사 월급 담보 주장은 전혀 사리에도 맞지 않는 대국민 정치사기(政治詐欺)극입니다.       

                        
서독 탄광에 취업시킨 한국인 광부들은 1963년 12월 16일 한국의 노동청과 독일탄광협회 간의 한국인 광부 연수기간 3년으로 정하여 광부 연수생이란 편법으로 서독파견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에 해외개발공사 같은 인력 파송할 정부의 공식기구도 없고 법제도 정비되지 않아서 편법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며 또한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서독에 취업하기 시작한 것은 자유당 정권 때인 1957년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서독 병원협회 부설 3년제 간호학교에 우리 한국인 여성들 150명이 입학하면서부터입니다. 서독 간호학교로 유학 갔던 학생 중에 자격증을 취득한 학생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선발이 잘못되어 자격이 안 되는 권력가들 집안의 딸들로 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독일 유학이란 허황된 생각으로 지원하여 입학했으나, 환자를 상대해보니 노동에 가까운 간호사의 실체를 체험하고부터는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대부분 학비만 낭비하고 되돌아온 반면, 성실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졸업하여 서독병원에 취직한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1960년 당시까지 서독의 병원들이 필요로 하는 간호사는 약, 19만 명에 달했지만 취업인 수는 17만 5천 명에 그쳐서, 결과적으로 간호사가 1만 5천 명이 부족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분을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외국인 간호사들을 수입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당시에 서독의 기독교민주당(CDU) 정권은 외국 간호사의 공식적인 수입을 승인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67회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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