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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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왈츠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3.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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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신안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재흥=꽃샘, 지난 추위를 소각한 꽃샘이 새벽녘 닭 울음을 찰지게 비벼댄다. 고요보다 찬란한 적막이 새벽을 마름질해 오면 시골의 하루는 동녘부터 개화한다.


겨울이 녹아 흐르는 소리를 맛보기 위해 가지마다 연초록의 잎들이 참새 같은 혀를 내밀기 시작했다. 장롱으로 밀려나는 겨울의 잔해가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둥거리고 있을 시간, 여명처럼 담장 밖에서는 이미 봄 마중을 위한 시선들이 남으로 꽂히고 있다.


남새밭, 겨울의 긴장을 저만치 밀어낸 봄동의 민낯은 자리마다 혈색이 밝다. 겨우내 움트는 겨드랑이의 촉으로 인하여 땅 속의 흙들은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창백하고 여린 뿌리들은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며 잠에 취해있는 이파리를 흔들어 깨웠는지 밭고랑을 기웃거리던 실바람이 먼저 알고 참새의 귀에 가만히 속삭여 주었다. 담장 밑 그늘진 곳으로 밀려난 겨울의 맨손은 이제 더 가벼워진 발걸음을 데리고 총총히 사라져 간다.  


빈 집, 떠돌던 바람이 후두염을 앓다가 그만 목젖을 놓아 버린 곳, 어머니의 한 숨과 등 굽은 계절이 하염없이 앉아서 빈 문을 덜컹거리며 여닫고 있다.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온 깃털이 뜯어진 벽지에 두 귀를 세우며 예전의 그 소리를 찾는다.


발자국마저도 가벼워 형체 없이 부서진 음성들이 날아가 버린 어머니의 젖은 손자국들을 찾는다. 문고리마다 묻혀 있을 지문과 마루에 스며든 맨발의 활자들이 나비처럼 날개를 젓는다.


밭둑, 단 한 번의 발화를 위해 작은 몸을 비틀어 봄꽃을 만들어 낸 봄까치는 그 청초함이 쪽빛을 담았다. 바람은 낮게 그 키를 감추고 행여나 고운 얼굴에 생채기를 입힐까 두려워 떨리는 손으로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쓰다듬을수록 봄까치의 매력은 살아나 을씨년스런 밭둑에 청사초롱의 햇살을 담은 등불이 솟아 오른다. 두드러기 일어난 밭둑은 지금 홍역을 앓고 있다. 쑥, 달래, 냉이를 창작한 봄의 왈츠가 대단원의 서막을 만들어 가고 있는 열화의 무대이다.


냇가, 실밥무늬로 수놓은 버들강아지의 실눈은 앙증맞고 귀여운 것이 우리 집 강아지 방울이다. 은방울도 금방울도 아닌 그냥 민방울이다. 바람이 바느질을 해대면 이처럼 고운 솜털 짜깁기가 나올까. 졸졸 흐르는 냇물이 밤이면 무지개로 피어나 버들강아지의 속눈썹을 건드렸을까. 방울이의 콧잔등에 피어난 보송보송한 솜털을 옮겨 놓은 듯 버들강아지의 융단같은 마름질은 냇가가 연출한 최고의 재봉질이다. 


들판, 냇가를 따라 남으로 여물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은 더 가벼워진다. 냇가는 지퍼처럼 들의 양쪽을 경계 삼아 잠그고 열기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초록의 여백을 가득 채워가고 있다. 벼를 잘라낸 밑동마다 자라난 성장통이 새 팔을 밀어 올리느라 분주한 신음들을 쏟아 내고 있다. 이곳이야말로 소망이 자라고 헛딛은 빗방울도 다시 부활의 나래를 펴는 곳, 봄맞이 들판은 그래서 새 날의 희망이요, 환희의 광장이다. 


다시 산기슭으로, 분명 하늘이 오색 먹줄을 튕겨 놓았다. 곳곳에 꽃등 기지개가 만발하고 있다. 시선이 꽂히는 곳마다 연초록 봄눈이 실눈을 치켜뜨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성급한 진달래와 개나리가 그늘진 옹달샘 가에 웅크린 겨울잠을 깨우고 있다. 목련은 벌써 고개를 내밀어 발동이 걸린 기슭에 경고를 발령하고 봄잠에 빠져 있다. 산벚꽃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숲에 기선을 제압한 물오리나무가 벌써 초록 입술로 하늘을 쪼고 있다.


학생들의 수업 장소를 들과 산으로 옮겨야 할 이유인데 아직 개학조차 못하고 있으니 시름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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