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77회
상태바
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77회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6.03 17: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타임즈]통일코리아 지도자회 이사장 문경주=고구려가 망했어도 중국에 귀화하지 않고 무국적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도권 자체를 거부하는 준 독립군과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며 언젠가는 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늘 상존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그들을 이웃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적과의 동침이라고 여긴다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지요. 그렇다고 일본군이 나서서 양민들을 학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같은 피를 받은 조선 놈들이 나서서 그들을 학살하여 머리를 들고 와서 공비라고 우기는데 굳이 묻고 따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그래도 당시엔 일본은 세분화된 치안유지법이 지배하는 나라인데 그 골치 아픈 난민들을 학살해 왔다면 인정하여 군대로 보낼 합법적인 병력의 확보이지요. 가뜩이나 군사력이 부족한 판에 법을 따져 17세의 청년들만 고집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되었을 겁니다. 전선은 동남아시아로 넓혀져 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월남 필리핀 까지 도 평정해야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公營圈)이 성취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목표로 하는 전쟁에서 군인이란 첫째의 목적이 적을 잘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민까지도 죽여서 머리를 들고 왔는데 굳이 묻고 따질 일이 아니며 군대를 늘려야 했을 겁니다. 그 때문인지? 해방된 조국에서 일본 군대에 있었다는 사람들은 더러 있어도 간도특설부대에 있었다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간도특설대의 경력은 그만큼 감추고 싶은 치욕적인 과오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관련하여 그 악랄한 놈들에게 부모 가족을 잃은 연변의 간도 지역 거주자(무국적자 포함)들은 가족의 원수를 갚겠다며 일명 개 잡이 부대라는 특공 테러 조직을 만들어 가끔 일본군들에게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간도특설대원들이 날뛸 여지는 오히려 더 넓어지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아무리 친일에 날뛰던 군인들조차도 간도특설부대에 소속되었다는 경력은 정말로 드러내고 싶지 않을 만큼 악명 높고 치욕적인 조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때문인지? 가짜영웅 박정희 신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가짜영웅 박정희가 간도특설대원이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고소도 하고 빨갱이로 비난하는 등 악을 씁니다. 그러면서도 가짜영웅 박정희가 1940년 이전에는 만주에 갈 수도 없고 가지도 않았다는 증거로써 그가 교사직을 그만두겠다는 의원면직 사표인 친필 사직서가 문경군청에 보관되어 있다며 그 기간에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들이댑니다. 또한 그가 담임했던 옛 제자들로부터 증언을 채증(採證)하여 1940년까지 문경보통학교에 얌전히 근무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주국 군관학교 지원 자격이 안 되는데도 어떻게 하여 입학시험을 치렀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구사범 교련 교사였던 아리가와 대좌의 도움을 받았다고도 하고 만주국 부의 황제에게 혈서를 써서 입학시험 자격을 얻었다고도 합니다. 그 두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시험이 필요 없습니다. 만주국 황제가 혈서에 감동하여 받아 주는 군관에게 시험이 필요하겠는가? 아리가와 대좌가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그 사람이 입학시험 자격을 주었다면 무엇하러 시험을 보겠는가? 그냥 특례 입대시키면 될 일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가짜영웅 박정희에 관한 모든 자료는 그의 과오를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발굴해 낸 것이 아닙니다. 보통사람들은 그가 혈서를 쓴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하면 그를 영웅으로 만들려는 세력들이 혈서 문제를 비롯하여 공비 토벌에 110여 회를 참가했다는 내용까지 자료가 쏟아져 나옵니다.         

        
박정희는 일본 천황을 향해 혈서 쓴 유일한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느 자료에도 그 혈서로 입학자격을 주었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가짜영웅 박정희를 진짜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머리가 나쁜 것 같습니다. 공비토벌을 110여 회 참가했다고 찬양해야 할 대상은 일본 놈들에게나 해당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사람에게 그런 자랑을 하느냐 입니다.

일본 놈들 입장에선 공비이지만, 조선 사람들 입장에선 독립투사들이란 사실을 잘 모릅니다. 또한 만주국 군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혈서를 썼다는 궁색한 주장을 어떻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국민으로서 올바른 정신으로 본다면 역사 이래 침략자에게 혈서까지 쓰면서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가짜영웅 박정희 하나뿐이란 사실을 스스로 폭로한 꼴입니다. 그게 어찌 변명이 되며 자랑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가 혈서를 쓴 행위는 우리나라 국민감정상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왜, 그들은 모른단 말입니까? 사실! 가짜영웅 박정희가 무고한 우리 동포들을 얼마나 죽여서 공비로 둔갑시켜 만주국 군관시험 자격을 얻었는지? 또는 그의 지지자들 주장대로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황증거는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군관시험장에 들어올 때 간도특설대장이었던 강재호가 박정희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증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정희하고 동기생인 이재기라는 사람이 증언자였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박정희에게 만주국 군관학교지원 자격을 주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튼, 가짜영웅 박정희는 1939년10월에 ‘목단강 군구 클럽’에서 군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는 겁니다. 목단강 지구는 만주군 제6관구였으며 연변 일대가 이 6관구에 속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가짜영웅 박정희를 시험장에 데려간 사람이 바로 국경감시대에 배속되어 있다가 간도특설부대로 전근한 봉천군관 훈련소 제4기 졸업생 강재호 상위였습니다. 그는 1939년 9월15일 안도현 명월구에서 간도특설부대가 조직되자, 상위계급으로 제1대 중대장을 맡았습니다. 당시에 그는 박정희와 같은 여관에 투숙하면서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79회에서 이어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