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을 휘다
상태바
직선을 휘다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9.08 1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타임즈]신안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재흥=이 녀석은 참 정직하고 단순하다. 굽힐 줄 모르니 세상과 타협도 없고 올곧은 바름뿐이다. 어쩌다 톱과 같은 무기나 강풍에 의해 휘어지는 날이면 제 모양의 변형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부러지는 습성이 있다. 강풍에 통째로 뽑힐지언정 잡목처럼 휘어지지 않는 그 기상이 명쾌한 삶의 진리를 담고 있기에 선비의 표상이자, 정신이었다.

담양 죽녹원은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사잇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구부러진 어깨가 반듯하게 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나무가 품어내는 상큼한 공기의 신선함은 질근거리는 머리가 금방이라도 맑아지는 느낌으로 인하여 스트레스에 찌든 이들에게는 힐링의 효과도 더해준다.

그러나 정작 대나무의 절정은 죽기 전에 화려하게 피는 대나무꽃이다. 모든 대나무가 꽃을 다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이면 꽃을 내어놓기에 우리는 대나무꽃에 호기심을 갖는다. 줄기의 성장에 에너지를 집중하므로 꽃을 피울 수 없는 천성인데도, 가끔 꽃을 피우는 대나무는 60년에 한번 피었다가 죽는다고 한다. 결국 대나무는 꽃을 만개함으로써 그의 절개 높은 존재감을 마감한다.

우리는 한 때 가진 것이 없음을 자랑으로 알고 살던 때가 있었다. 조선의 유학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이 지역에는 안빈낙도와 청풍명월의 사상이 축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배지가 있는 땅이었기에,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엇박자를 내는 대표적 지역일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처럼 쭉쭉 뻗은 이념과 올바른 직언들이 송곳처럼 불거지는 곳이었기에 세상에 굴복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울분이 지나치면 비분강개하다 죽음으로써 응수한 절개의 고장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동안 아나로그 방식으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동질의 지역 정서로 똘똘 뭉친 로칼리즘(localism)과 피해 의식 앞에서 집단의 획일적인 로그인과 로그아웃만 외쳐댔다. 우리 후세의 살아가야 할 방법을 논하는 일은 뒷전에 두고 과거와 현재만을 부르짖었던 기억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날로 세계화 되어가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물결을 막는 일과 거스르는 일에 더 민감했던 부분도 없지 않았다. 잃어버린 상실감에 특정 논리는 더욱 강해지고 무장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무섭게 디지털화되고 융합되고 있다. 시대 상황이 과거의 아나로그 방식으로는 발붙일 곳이 없는 국경없는 다국적 무한 경쟁 시대로 돌입해버렸다. 컴퓨터에 인문학이 가미된 신개념들이 정치, 경제를 점령하고 문화예술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동양으로 세계 경제의 축이 이동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느 때 보다 좋은 국운 융성의 기회를 잡고 있다. 한류가 거저 얻은 것이 아닌 것처럼 창의적 사고의 전환이 힘을 발휘할 때다.

우리들 삶의 프레임을 과감하게 바꾸자는 얘기다.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는 역설은 이제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우리의 생존에 관련된 삶의 문제다. 자손만대에 걸쳐 번영과 영광을 물려주기 위해 아나로그같은 과거의 유산을 과감히 버리고 디지털 방식의 새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직화된 직선 방식의 사고 체계도 휘거나 구부려서 45°와 같은 중도적인 유연한 틀로 전환하는 것이 나와 후손을 위한 진정한 고장 사랑의 한 과정이 아니겠냐는 질문을 던져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