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에 여청강력팀 만든 경찰…탁상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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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에 여청강력팀 만든 경찰…탁상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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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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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서마다 팀 신설, 3명에 불과…출동차랑 없어 행정 배차
사무실 제때 마련 못해 ‘더부살이’도…“지원 속도 내겠다”
광주경찰청. 						 /광주경찰청 제공
광주경찰청. /광주경찰청 제공

 

[광주타임즈]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이른바 ‘정인이 사건’ 등을 계기로 경찰이 중대한 아동학대·성폭력 범죄를 전담하는 강력수사팀을 신설했지만 인적·물적 지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팀장을 비롯한 3명이 일하는 소규모 조직이고, 출동 차량조차 배정받지 못해 행정 업무에 쓰이는 승용차를 얻어 쓰거나 매일 배차를 신청하는 실정이다. 사무실을 제때 마련하지 못해 일주일 간 다른 팀에 더부살이를 했던 사례도 있다.

잇단 여성청소년 강력범죄에 대한 책임론의 화살을 피하고자, 경찰이 예산 등 충분한 지원 대책 없이 졸속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은 치안 수요가 가장 많은 전국의 1급 경찰서에 이달부터 여성청소년범죄강력수사팀(여청강력팀) 1개팀을 신설했다.

해당 팀은 경감급 팀장 1명, 경위급 이하 팀원 2명으로 구성된다.

8개월 간 의붓 부모의 상습 폭행으로 복부 손상 등을 입고 지난해 10월13일 숨진 정인이 사건이 최근 재조명되는 등 아동학대 사건이 화두에 오르면서, 경찰이 내놓은 후속 대책이다.

여청강력팀은 중요 여성·청소년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 초기부터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기 위한 초동 수사와 수사 연속성 강화를 목적으로 만든 부서다. 기존의 여성청소년범죄수사팀, 실종전담수사팀과는 별도의 조직이다.

여청강력팀이 도맡는 업무는 ▲아동학대 사건 ▲불특정 피의자 도주 강간·강제추행 ▲학교 주변 등 공연음란 ▲소재 불명 신상 대상자 추적 등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용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 유인·권유 행위 등의 범죄에 대해선 합동 또는 인지 수사도 할 수 있다.

치안 수요 증가 추이와 방대한 업무 영역에 비해 팀장을 비롯한 3명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당 팀엔 수사 경과(형사법 능력평가 시험 합격) 보유자 또는 강력범죄 수사에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인력들을 우선 기용한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 부담 등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력 수급이 쉽지 않다.

차량·사무실 등 사전 준비가 미흡해 일선 곳곳에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관할 5개 경찰서 모두 1급서인 광주경찰청도 이달 5일을 기해 각 서마다 여청강력팀을 신설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신속·정확한 초동 대응을 하기 위해 추진했지만, 정작 강력범죄 발생 시 긴급 현장 출동·검거 피의자 호송 및 유치장 입·출감에 쓰일 고정 배차 차량이 없다.

강력팀·경제범죄수사팀을 비롯한 수사 외근 직렬 부서는 9~11인승 규모 승합 차량을 고정적으로 배정 받아 업무에 활용한다. 그러나 올해 경찰청 차원의 기동 차량 구입 예산에 여청강력팀의 소요는 반영되지 않았다.

발 빠른 초동 대처를 위한 기본 인프라 조차 갖춰지지 않은 격이다. 이에 광주의 각 경찰서들은 공문서 수발 등 행정 업무를 위해 2~3대 가량 여유분을 갖춘 차량을 여청강력팀에 지원하고 있다. 팀에 전담 배속된 차량이 아닌 임시 배차다.

일부 경찰서 여청강력팀은 승합차가 아닌 5인승 준중형 승용차를 당분간 전용하기로 했다. 다른 경찰서는 매일 오전 행정 배차 신청을 해 차종과 관계 없이 당일 여유가 되는 차량을 이용한다.

5인승 준중형 승용차는 근거리 출장 및 행정 업무에 쓰이는 만큼, 강력 범죄 전담팀이 쓰기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온다. 실제 각 지구대에서도 준중형급 순찰차로는 긴급체포 피의자 호송 등에 불편이 있어, 중형 순찰차로 교체 중이다.

타 부서의 배차 신청이 많은 날엔 차량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 자칫 업무 지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찰은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전용 차량 구입 비용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다만 일선 목소리를 수용해 유휴 차량 확보·우선 지급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가뜩이나 수사권 조정 등으로 신설 부서가 늘면서 청사 공간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무실도 겨우 마련됐다.

광주의 한 경찰서는 여청강력팀 창설 일주일여 만에 전용 사무실을 구했다. 그 사이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조회 등 업무는 여청수사팀에서 봤다. 그나마 마련한 사무실도 기동순찰대 휴게실을 급히 개축한 것으로 열악하다. 문제는 중대 사건 발생 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여청수사팀과는 다른 건물이어서 유기적인 업무 협조가 어렵다.

또 다른 경찰서도 청사 내 유휴 공간에 급히 외벽을 세워 사무실을 만든 뒤 여성청소년과 산하 부서의 사무 공간을 재조정했다. 여청강력팀 신설에 앞서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다른 경찰서들도 청사 내 공간을 짜내다시피 해 여청강력팀 사무실을 만들었다. 충분한 지원과 준비 없이 졸속으로 이뤄진 셈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을 처리하는 신설 전담 조직이지만, 시작부터 구성원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경찰관은 “충분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업무가 과중한데 지원조차 변변치 않으면 여청강력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여성청소년과 소속 경찰 간부는 “조직 내에서도 여청강력팀 신설을 염두에 둔 것은 꽤 오랜 일이다. 다만 정부 예산 부서와의 협의가 원만치 않아 관련 예산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며 “충분한 지원·보완 대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연 ‘정인이 사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고, 그런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경찰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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