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 사상’ 광주 재개발 붕괴 참사, 경찰 수사 5대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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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 사상’ 광주 재개발 붕괴 참사, 경찰 수사 5대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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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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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다단계 하청, 無자격 시공·이면 계약 의혹
절차 어긴 철거…‘살수 확대’ 지시 책임 조사 중
‘허가·감독’ 부실 행정도 수사 선상…입증 주력
전문 감정·국토부 조사 검토 뒤 붕괴 경위 규명
13일 오전 광주 북구 우산동 구호전 장례식장에서 철거건물 붕괴 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발인식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13일 오전 광주 북구 우산동 구호전 장례식장에서 철거건물 붕괴 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발인식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광주타임즈]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동구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속도를 내고 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 정해진 작업 절차를 어긴 공정 등의 의혹이 수사선상에 올랐고, 부실 관리·감독 의혹도 살핀다.

수사 결과와 전문 감정 등을 토대로 정확한 참사 원인·경위도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 불법 다단계 하청…무자격 업체·이면 계약 의혹

현대산업개발로부터 공식 철거 용역 계약을 맺은 ㈜한솔은 지난달 14일 ‘학동 650-2번지 외 3필지 등 건물 11채(붕괴 건물 포함)를 해체하겠다’며 동구에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실제 공정엔 허가를 받은 ㈜한솔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일반 철거는 현대산업개발(시행사)→㈜한솔(시공사)→백솔(불법 하청) 등 하청이 이뤄졌다.

석면 철거 공사는 다원이앤씨가 수주했으나, 백솔에 재하청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신생 업체인 백솔은 다른 업체에서 석면 해체 면허를 빌린 무자격 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지분을 나눈 것으로 추정되는 이면 계약 정황 등도 확보하는 등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 계획된 작업 절차 어긴 철거 공정

철거 허가를 받은 ㈜한솔이 아닌 백솔은 계획서 상 5층부터 아래로 해체(하향식)해야 하는 작업 절차를 어기고, 1~2층을 먼저 허물었다.

이후 건물 뒤쪽에 쌓아둔 흙·폐건축 자재 더미 위(3~4층 높이)에서 굴삭기가 중간부 해체 작업을 했다. 강도가 가장 낮은 왼쪽 벽을 허물어야 하지만 뒤쪽 벽부터 부쉈다.

백솔 대표이기도 한 굴삭기 기사는 장비 하중(30여t 추정)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작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경찰은 ‘3층 높이로 쌓은 흙더미 위에 올랐지만 굴착기 팔이 건물 5층까지 닿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뜯어내려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계획서 상 작업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배경에 다솔이앤씨가 공법 등을 따로 지시한 것이 아닌가 살펴볼 예정이다.

 

■ 붕괴 당일 ‘물폭탄’…현대산업개발측 지시?

철거 중 발생 먼지를 줄이고자 물을 뿌리는 살수 작업이 참사 당일 과도했고, 흙·폐자재 더미 등에 하중을 더해 붕괴로 이어졌다는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먼지 발생량이 많은 압쇄 공법은 살수가 필요한 만큼, 현장엔 고압 펌프 설비가 4대 가량이 투입됐다. 그러나 붕괴 당일엔 2배 많은 설비가 투입돼 철거 공정 중 물을 뿌렸다.

일각선 갑작스레 많은 물이 굴삭기를 지탱하던 흙·폐건축 자재 사이에 스며들어 흘러내리면서 붕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먼지 발생 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현대산업개발 측에서 살수 작업 확대를 지시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측의 살수 지시 유무와 구체적 내용 등도 확인 중이다.

 

■ 부실 허가·’위험 경고’ 민원 경시...행정 책임은

25쪽 분량의 철거 계획서가 부실하게 쓰여진 점도 드러났다. 층별 철거 계획이 부실했고, 국토교통부 고시와 달리 주요 철거 장비인 굴삭기 하중을 계산하지 않았다.

흙·폐자재 더미로 인해 지하층이 받는 하중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계획서엔 지하층 해체에 따른 지반 영향만 검토하면서 ‘주변을 굴착한 후 지하 구조물을 해체하므로 토압에 의한 붕괴 위험이 없다’고 적었다.

구조 안전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철거를 허가한 관할 자치구 광주 동구청의 감독 책임도 수사 사항 중 하나다.

안전 사고를 우려하는 민원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붕괴 두 달 전엔 같은 구역에서 철거 중인 건물(옛 축협)의 사고 위험성을 제기하는 공익 제보가 있었고, 한 달 전에도 안전 위협 민원이 잇따랐다. 하지만 동구는 구두 통보, 공문 발송 조치만 했다.

경찰은 관계 공무원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통해 관리·감독 소홀 여부도 따지고 있다.

■ 정확한 붕괴 원인·경위는

경찰은 ▲부실한 건물 지지 ▲하중 등 구조 안전을 경시한 철거 방식 ▲과도한 살수에 따른 하중 증가 ▲굴삭기 건물 내 진입 등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

현재로선 붕괴 원인을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장 안전 관리·감독을 책임지는 감리자를 입건해 자세한 붕괴 경위를 파악 중이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감리 일지 등을 확보하는데 주력, 참사 직전 상황 등도 살펴본다.

감리자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고 보고, 건물축물관리법 32조(감리의 의무) 위반 여부도 적용할 지 검토한다.

경찰은 전문기관 감정과 국토교통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등을 두루 검토해 정확한 붕괴 원인·경위를 규명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현대산업개발, 한솔·백솔기업 관계자와 감리자 등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법리 검토를 거쳐 조만간 신병 처리 방침을 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13일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진 정황을 확인한 만큼, 정확히 어떤 지시 체계에 의해 철거가 이뤄졌는지 밝힐 예정이다”면서 “다수의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한 만큼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고 엄정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5층 건물이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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