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안는 빚과 세금, 상속포기만이 답일까?
상태바
떠안는 빚과 세금, 상속포기만이 답일까?
  • 광주타임즈
  • 승인 2022.05.11 1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타임즈]무안군청 세무회계과 고수현=현재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는 고령사회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2021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6.5%, 2025년 20.3%, 2060년 43.9%가 될 것이라고 한다. 현대 사회는 이미 핵가족을 넘어 해체 시대에 이르렀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속은 누구에게나 발생한다. 이렇게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상속은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상속으로 얻는 재산은 불로소득이다.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어느 날 갑자기 상속인이 되는 것이다. 심한 경우 평생 한 번도 본적 없는 할아버지의 사망으로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거나 생면부지 혈족의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빚 폭탄을 맞기도 한다. 이처럼 상속인의 의지나 인지여부와 상관없이 저절로 상속권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상속에 대해 새롭게 인식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대 각국은 시민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기부문화를 들곤 한다. 선진국의 경우 많은 재산가들이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테슬라 주식 약 6조8000억원을 기부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도 기부액이 약 41조7000억 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도‘레거시 10(Legacy 10)’운동으로 영국인의 10%가 자발적 유산으로 유산 10%를 기부하는 캠페인이 진행됐다고 한다. (포브스, 202204호, 2022.03.23.)

프랑스도 기부문화가 활발한 나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말이 프랑스어에서 온 것에서 알 수 있듯 기부문화가 전통이 돼 있고 후원자나 기증자의 이름을 딴 공원과 건물들이 거의 모든 마을마다 있을 만큼 흔하다고 한다. 이처럼 해외 선진국에서는 부호들이 유산 나눔을 선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사회를 위해 베풀고 봉사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문화가 정착돼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당당한 선진국이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한국을 아시아·아프리카 등 주로 개발도상국이 포함된 그룹 A에서 선진국 그룹 B로 지위를 변경했다. 이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국가가 선진국이라면 국민의 의식도 선진화돼야 한다.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AF)과 미국의 여론조사회사 갤럽의 조사에 의한 2017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가 62위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사회안전망 구축과 부의 재분배는 사회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사회적 기부는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핵가족을 넘어 가족이 해체돼 가는 시대에 사회활동으로 축적하고 보유한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상속만을 고집해야 할까?

우리나라도 상속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기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속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돼 유산기부가 늘어나면 상속을 둘러싼 문제들 또한 저절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행 상속제도 내에서도 문제점은 여러 가지 있다. 민법에 따르면 상속이 발생하면 돌아가신 분의 모든 권리의무는 상속인에게 승계된다.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 받는다.(‘민법’ 제1005조) 상속인들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내에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하지 않으면 단순승인으로 간주돼 제한 없이 피상속인의 권리의무를 상속받도록 돼있다.(‘민법’ 제1026조) 민법에서 규정하는 상속권을 보면 1순위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순위 직계존속, 3순위 형제자매, 4순위 4촌 이내의 방계혈족까지 명시돼 있다.(‘민법’ 제1000조, 1990.1.13.개정)

현대 사회는 이미 핵가족 사회를 넘어 가족 해체의 시대다. 이렇게 가족 체계가 과거 혈족위주의 개념과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서 민법상 규정하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까지 알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행 법 내에서도 상속권 범위에 대한 조정이나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목할 것이 상속재산이다. 재산 뿐 아니라 빚도 상속되기 때문이다. 재산이 더 많다면 특별한 문제가 안 되겠지만 채무가 재산을 초과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민법에는 상속인들이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민법’ 제1019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상속 포기한 재산의 귀속이다. 흔히 상속포기를 하면 거기서 모든 상속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민법의 규정을 보면 포기한 상속재산은 그 상속분이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의 비율로 그 상속인에게 귀속되도록 돼 있다.(‘민법’ 제1043조) 결국 상속은 재산 뿐 아니라 빚도 상속되므로 상속 포기를 하면 빚이 다른 상속인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상속으로 인한 취득세 납세의무도 마찬가지다. 지방세법상 상속이 개시되면 상속받는 물건을 상속인 각자가 취득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상속자에게는 취득세 납세의무가 발생한다.(‘지방세법’ 제7조) 또한 상속을 포기할 경우에는 상속권이 다른 상속인에게 귀속되므로 취득세 납세의무도 다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

무안군에서 지난 10년 간 상속 취득세 신고현황을 보면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 한 사례가 매년 1건 에서 18건에 이른다. 이는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평균 0.57%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의 현황을 보면 연락 두절된 가족의 사망 후 빚을 떠안는 부채 공포로‘돌연 상속’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 기사) 이렇게 상속을 둘러싼 제반 문제들이 현대 사회에서 국가적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상속포기는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필요한 법적 장치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에서 상속포기는 대부분 빚이 많은 경우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가족 해체 사회에서 생사조차 모르던 가족의 빚을 무조건 떠안도록 법에서 규정하는 것이 정당성을 갖는지 의문이 든다. 법령의 잦은 개정은 사회 국가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겠지만 법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 현실의 상황을 고려해 상속포기제도에 대해 보완책을 마련하는 편이 국민의 신뢰보호에 더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법의 사명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 변화된 시대흐름을 수용하는 법이 될 때 국민의 신뢰보호라는 법의 기본원칙이 확립될 수 있고 조세에 있어서 조세법률주의와 형평성이라는 정의 또한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