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적지’와 ‘오월걸상’은 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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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사적지’와 ‘오월걸상’은 잘 있겠지?
  • 광주타임즈
  • 승인 2022.07.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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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 정병흠=2022년 현재 ‘5·18사적지’는 광주시 32개소, 전남도 25개소이다. 5·18당시 진원지, 항전지(격전지), 주요 사건이 있었던 곳 등 5·18민주화운동의 의미와 정신이 기억돼야 하는 역사적인 공간을 5·18사적지로 지정한다. ‘5·18사적지’에는 사적비(史蹟碑)를 세워 사적지임을 알리고 있다.

사적지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5·18정신의 전국화·현재화를 위해 의자형태로 제작된 ‘오월걸상’이 있다. ‘오월걸상’은 시민 누구나 앉아 쉬면서 잊지 말아야 할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한 오월정신을 알리자는 의미를 담아 제작된 것이다.

광주의 ‘5·18사적지’는 1998년 ‘전남대학교 정문(제1호)’을 시작으로 2017년 ‘고 홍남순 변호사 가옥(제29호)’까지 지속적으로 5·18의 정신 계승을 위해 지정되고 있다. 전남은 2017년 ‘전남도 5·18 사적지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목포역에서부터 함평공원까지 5·18 당시 총격전이 펼쳐졌거나 시민들의 궐기대회, 부상자 치료 등이 있었던 곳을 2020년 5월 지정 고시했다.

최근 광주 광산구에서는 1980년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 등 여성 민주화운동가들이 구금됐던 장소인 ‘옛 광산경찰서 유치장 부지’에 대한 사적지 지정을 위해 노력중이다. 옛 광산경찰서 유치장 부지는 과거 2011년에도 사적지 지정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구체적 자료의 부족을 이유로 지정되지 못한 바 있다. 이렇듯 5·18사적지 지정은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오월걸상’은 2018년 1월 부산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 인근 쌈지공원에 1호를 시작으로 2022년 6월 이화여대 앞 대현문화공원 내에 건립하면서 전국적으로 총 6호까지 제작 됐다.

1호는 1987년 호헌철폐와 광주학살 진실규명을 외치며 분신한 ‘황보영국 열사’를 기리며 제작됐다. 2호는 같은 해 5월 목포역 광장에 있는데, 1986년 목포역 광장에서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다 분신한 ‘강상철 열사’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제작 됐다. 목포역 광장의 것은 5·18희생자 164명을 형상화해 걸상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3호는 2019년 5월 서울 명동성당 앞에, 4호는 2020년 5월 ‘전태일·박종철·문익환’ 등 생전에 5·18 등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안장된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묘지에 건립됐다.

5호는 특이하게도 5·18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청 앞에 건립됐는데, 이는 5·18의 정신이 광주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화 해나감을 의미하고 있다. 6호는 1980년 6월 9일 이화여대 앞 사거리에서 광주의 진상을 알리며 분신했던 ‘김종대 열사’를 기리기 위해 올해 6월 건립됐다.

이처럼 ‘5·18사적지’와 ‘오월걸상’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이후 5·18진실규명 활동 등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역사적 현장과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5·18 헌법전문 수록 등과 함께 후인들이 해나가야 할 사명이자 과제이다.

우리 가까이에 언제나 조용하게 활동하며 ‘5·18사적지’와 ‘오월걸상’을 지켜가고 있는 이가 있다. 1980년 5월 항쟁의 현장에는 무수히 많은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있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두환 반란군부의 만행에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 가운데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 학생 신분으로 시민군 활동을 하다 27일 아침 군부에 붙잡혀 끌려가 구타와 갖은 고문을 받았던 김향득씨가 바로 그다. 그때의 후유증일까? 김향득씨는 현재 건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전국의 ‘오월걸상’과 ‘5·18사적지’를 살피고 있다. SNS를 통해 5·18의 역사를 알리고, 역사적 현장을 꾸준히 홍보하며, 우리가 잠시 소홀해질 만하면 경각심을 심어 주고 있다.

얼마 전 기록관을 방문해 “어머님 잘 모셨네. 안 바쁠 때 시원한 맥주나 한 잔 하세.” 라고 이야기하는 김향득씨의 머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최근 김향득씨는 평생 자신을 곁에서 챙겨주시던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가 됐다. ‘어머님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그리울 만도 한데, 이렇게 더운 날에도 카메라와 함께 열심히 5·18을 사랑하고 다니시는구나.’ 생각을 하며, 홀로 수 천만 명을 상대하는 김향득씨의 노고에 가슴 속 깊숙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 오름을 느꼈다. 계속되는 장맛비와 섭씨 34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에도 김향득씨는 ‘5·18사적지’와 ‘오월걸상’,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5·18을 기록하며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들을 솔선수범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쉬는 동안 SNS를 열며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다.

‘5·18사적지’와 ‘오월걸상’은 잘 있겠지?
<※광주시청 홈페이지 기고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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