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손수건은 계엄군” 5·18 편의대 실체 구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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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손수건은 계엄군” 5·18 편의대 실체 구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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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3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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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사 자료 분석…투입 편의대 511명 파악
경찰 관련 기록·‘기관 요원 투입’ 계엄군 증언
총을 든 청년들이 1980년 5월 24일 프락치나 간첩으로 의심되는 청년의 손을 뒤로 묶고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남도청으로 연행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뉴시스
총을 든 청년들이 1980년 5월 24일 프락치나 간첩으로 의심되는 청년의 손을 뒤로 묶고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남도청으로 연행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뉴시스

[광주타임즈]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사이에 침투해 시민들을 선동하고 신군부에 관련 정보를 넘기는 등 전두환의 정권 찬탈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계엄군 편의대 운용 현황이 국가기관 조사로 한 걸음 더 구체화했다.

30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전 관계자에 따르면, 조사위는 지난 4년 활동 기간 동안 계엄군 편의대의 활동을 추적한 내부 보고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입된 편의대의 실체 및 주요 활동’을 제작했다.

편의대는 사복 차림으로 첩보·정보 수집·선동 등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 부대를 뜻한다. 5·18 당시 계엄군이 운용한 편의대는 시민 행세를 하며 시위대에 잠입해 동향을 파악하고 대시민 진압 작전 당시 연결책 역할을 도맡았다.

조사위는 그간 발굴된 자료와 증언을 재분석하고 신빙성을 검토, 편의대 투입 규모와 역할을 구체화했다.

먼저 조사위는 1981년 육군본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가 펴낸 ‘소요진압과 그 교훈’ 보고서에 기재된 ‘기존 정보계통의 첩보수집’ 표 속 편의대 투입 규모와 출신을 분석했다.

해당 표는 5·18 항쟁 기간이었던 1980년 5월 22일부터 26일 사이 투입된 군·경의 편의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편의대 관련 자료 중 투입 규모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 자료가 유일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해당 기간 투입된 편의대 정보요원 수는 511명으로 ▲31사단 194명 ▲ACIC 19명 ▲정보사령부(정보대) 2명 ▲헌병 13명 ▲전교사연구관 72명 ▲경찰 69명▲민간인 45명 ▲기타 97명이다.

조사위는 31사단의 편의대 운용 과정에서 사단사령부와 산하 96연대 장교·하사관·군속예비군 지휘관 등이 편의대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자료인 ‘보병학교 부대사(1980)’에도 5·18 이후 군이 대민동향 첩보수집 차원 조직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해당 내용에서도 장교와 하사관 등 관련 출신 정보요원이 투입됐다는 비슷한 기록이 발굴됐다.

헌병 편의대는 전교사 헌병중대 소속으로 파악됐다. 관련 자료 ‘1관구사령부부대사(1980)’속 1975년 4월 광주에 전교사헌병부대를 만들어 운용했다는 기록이 주요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ACIC는 전교사가 파견한 보안부대원으로 판단됐다. ‘1관구사령부부대사’ 자료는 ACIC를 ‘전교사에 배속된 보안부대’라고 설명한다. ‘31사단소요진압판단보고(1989)’ 자료 속 전교사 정보계통 첩보수집 도표상에도 ‘ACIC 19명’이라 편성돼있어 동일 부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교사 연구관 72명은 전교사 산하 전투발전부·교육발전처 소속 현역 또는 예비역으로, 경찰 편의대 69명은 전교사에 배속된 전경대 소속으로 파악됐다. 정보대 소속 2명은 ‘국군정보부대사(1980)’에 기록된 직위표상 부대장인 박모 중령과 정보담당관 정모 소령으로 특정된다.

이밖에 민간인 45명은 전교사 소속 군인 가족 또는 군인의 친척 중 광주에 살고 있던 이들로 확인된다. 다만 기타 97명에 대한 실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서나 증언을 확보하지 못했다.

경찰 기록에서도 편의대 운용 사실이 드러난다. 전남경찰청 치안본부가 펴낸 ‘전남사태 관계기록(1980)’에는 5월 23일 오후 6시께 ‘편의대(사복) 3/33을 시내에 투입했다’는 기록이 확인됐다. 5·18 당시 경찰 정보센터가 53곳, 군 단독 정보센터 11곳, 군경합동정보센터 14곳 등 최소 정보센터 78곳이 운영된 사실도 훗날 확인됐다.

조사위가 활동 기간 동안 만난 관련자들도 당시 편의대 운용 내용을 증언했다.

당시 11공수 62대대 6지역대 9중대 소속이었던 사병 최모씨는 조사위에 “1980년 5월 19일부터 이틀 동안 금남로에 투입된 과정에서 사복을 입은 기관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시위대가 숨어있는 곳을 알려줬다”고 증언했다. 시위대 중 선동하는 인물들을 체포하려 하자 대대장이 ‘기관요원이 있다’며 막아섰다고도 밝혔다.

그는 조사위에 “이들은 두발이 단정했고 통일된 점퍼를 입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피하기 바쁜데 (이들은) 과감하게 모을 드러내놓고 시위대가 들어갔을 방향을 가리키는 행동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최모 당시 3공수 작전보좌관도 “손목에 노란 손수건을 묶고 있는 시위 참여자를 체포·구타·사살하지 말라. 이들은 계엄군 편의대다”고 증언했다.

조사위는 이같은 자료 분석과 증언 수집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추가 자료를 입수하지 못해 종합보고서에 내용을 수록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조사위 전 관계자는 “계엄군의 편의대 운용은 5·18 진압 작전, 군·경에 의한 구금 등 인권침해, 훗날 이어진 왜곡 등 전반에 걸친 5·18 진상규명과 맞닿아있다”며 “편의대 운용은 조사위가 마치지 못한 미완의 과제 중 하나다. 훗날 출범할 관련 조사 기관이 관련 내용을 추적·파악해 실체를 확실히 규명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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