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83회

2020-07-08     광주타임즈

 

[광주타임즈]통일코리아 지도자회 이사장 문경주=그리고 애국자들을 빨갱이로 둔갑시키고 자신들이 곧 애국자요 법이라고 국민들을 세뇌시켜 민족혼을 이권주의로 바꿨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들이 불과 20여 년간 세뇌시킨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가관도 민족혼도 무디어졌으며 오직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요 북한을 비난하면 애국자란 논리로 바꿔 놓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그만큼 어리석었다는 반증입니다. 사실 가짜영웅 박정희에 잘못은 거의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 진실들은 믿을 수 없으며 가짜영웅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곧 빨갱이 종북(從北) 세력이라는 식의 가치관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다른 분이 썼던 가짜영웅 박정희 분석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혈서를 썼던 1939년 3월로부터 40년이 지난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던 안가에서 비밀 주연을 즐기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그가 사망할 당시에 만찬이 차려진 커다란 교자상 앞에는 가짜영웅 박정희가 앉고 중앙정보부장, 의전과장 순으로 둘러앉았다. 그리고 중앙정보부 박ㅅ호가 데려온 여인들에게 의전 교육을 시킨다며 각하를 모신 것을 절대 소문내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참석시킨 인기 가수 심ㅅ봉과 모델 신ㅈ순이 유행가를 부르며 그의 술잔에 양주를 따랐다.-2011년 10월 24일자인용- 그렇게 ‘황음’에 빠진 가짜영웅 박정희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그 안가에서 주연을 벌이며 흥을 돋우기 위해 유명 연예인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술판들은 소행사(小行事)와 대행사(大行事)로 구분되는데 대행사에는 두 명 이상의 연예들이 불려 왔다. 그런 자리에는 비서실장과 정보부장 등 믿을 수 있는 권력자들 3~4명이 참석해서 주흥을 즐긴다. 반대로 소행사는 가짜영웅 박정희 혼자서 한 여인을 불러 즐기며 밀회를 한다. 그런 행사는 매월 되풀이되었다. 대행사는 한 달에 2~3번에 그치지만, 소행사는 무려 7~8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자를 공급하는 것은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의 몫이다. 당시 의전과장 박ㅅ호가 장충동에 있는 요정의 마담이 섭외해 주는 대로 의전 교육을 시켜 대통령에게 제공한 여자만도 100여 명이 넘는다고 했다. K 대학교 김 모 교수에 따르면 김ㅈ규 영가가 사형당하기 전에 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의하면 비밀 안가의 가짜영웅 박정희에게 불려 들어간 연예인들을 중앙정보부가 공급하기 전에까지 전부 합치면 200여 명이 넘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 연예인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 2011년 10월 19일 ‘오마이뉴스’ 인용-          

           
따라서 김재규의 박정희에 대한 진실 된 평가는 총을 쏘면서 “이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소리쳤다는 그 말 속에 가짜영웅 박정희에 대한 평가의 실체적 본심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그 안가라는 게 어떤 건물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가짜영웅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점차 성공을 굳혀 가자,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쿠데타군을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하여 아주 극진한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모 기업의 총수인 정 모 씨가 자신도 빠질 수 없어 쿠데타군을 집으로 초대했던 것입니다. 가짜영웅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가까운 그 집을 보자마자 욕심이 동했던 것 같습니다. 만찬이 끝나자 곧 주인 정 씨에게 그 집을 자신에게 줄 것을 제의했다는 겁니다. 정 씨는 난감했습니다. 안 된다고 했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 빤한 이치라서 “각하, 이런 고옥(古屋)을 무엇 하려고 그러십니까?”하고 조심스레 물었다는 겁니다. 그러자 가짜영웅 박정희는 아들 공부방으로 쓰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순순히 집을 내어주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강제로 얻은 집을 훗날 안가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가짜영웅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18년간 집권하면서 통치 행위를 통해 그가 애국자요 영웅인 것처럼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대한뉴스’라는 수단을 통해 선전했지만, 그가 죽고 난 후엔 그의 잔당들에 의해 그가 영웅이었다는 요지로 세뇌교육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로부터 가장 강하게 세뇌당한 세대는 1940년 전, 후에 출생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분들의 90% 이상이 그를 영웅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각종 선거에서 가짜영웅 박정희 지지 세력들에게 찬성표를 찍어대는 이른바 차돌 표 유권자들로 분류된다는 겁니다.


만약 가짜영웅 박정희가 집권 시작한 1961년 5월 16일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이 될 역적입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그를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며 박정희를 지지한다는 후보자들에게 표를 찍어 대는 사람들은 50세 이상의 제대 장병들 단체와 관료 출신들, 그밖에 세뇌당한 약 30% 정도의 차돌 표 유권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영웅조작 세력들이 교묘하게 꾸며대는 거짓 선전에 속아서, 박정희는 사람의 경지를 넘어서는 전지전능한 신인 것처럼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1년 5월 한국 정당학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 국민들 가운데 82.6%는 가짜영웅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경제개발 평가에서 92.1%가 가짜영웅 박정희 공로라고 믿고 있으며 국민의식 변화 66.6%, 외교안보 평가 64.8%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박정희 덕분에 잘살게 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북한 인민들이 김일성 일가 덕택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믿음과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은 1953년부터 미국에 의해 계획되었으며 미국을 축으로 하는 세계만방의 민주주의 우방들의 성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84회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