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과 종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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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과 종교를 찾아서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07.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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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최수호 = 지금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친분관계 유지에 급급해서 자칫하면 인간적인 순수한 관계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외로움을 더욱 악화시키는 외톨이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하기도 한다. 물론 외톨이라고 해서 꼭 외로운 것만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속에 스며든 절친한 인간관계가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엮어 가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료나 친구들은 많지만 허심탄회하게 인생의 깊이를 논할 수 있는 자기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 벗은 흔하지 않다.

사실은 직장 동료나 사귀는 친구는 우연히 생길 수도 있지만 깊은 속마음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벗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벗이 되려면 신뢰성을 지속적으로 쌓아갈 수 있어야 하고, 인생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나야 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서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강한 결속력을 드러내는 질 높은 사랑을 아무런 걸림 없이 나눌 수 있는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벗의 존재는 외로움을 해소하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필수적 요건이다.

벗이란 개성, 기질, 성실, 친밀감 등에 끌려서 단지 좋아하게 되고 함께하면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 선택한 동료나 친구와는 다르다.

진정한 벗은 감정적인 삶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에게는 물론 기대할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간적인 따뜻함을 베풀어주는 청순함을 간직하고 있는 자가 벗으로 선택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벗은 성적 긴장감이 없고 서로 편안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동성(同性)이 더 바람직하다.

그렇다해도 모든 사람에게는 사소한 결점이라도 있게 마련이므로 가급적이면 상대의 결점은 접어서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여유를 부려야 한다.

그렇다고 어떻게 대하든 우정을 유지하기위해 마냥 용서하라든지 희생을 감수하고만 있으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겪어야만 했던 불만이라면 관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처 입은 감정이 있다면 분명하게 전달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불편을 전하는 과정이 상대에게 부정적인 불평으로 여겨지게 하여 죄책감이나 마음의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지못해 만나는 관계라면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특히 악의적인 동기에서 불편함을 보여주었다면 단호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에게 희생만 당하는 경우라면 관계를 과감하게 청산하는 슬기로움을 보여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면 자기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자기희생을 수반하는 대인관계를 미덕으로 여기는 태도는 진정한 인간관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알고지내는 사람 모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잘 보이려고 자기의 진심을 숨기는 위장된 삶에 익숙해 있을 자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면 맹목적으로 자기의 입장만 고수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런 태도로는 진솔한 벗이 될 수도 없고 진정한 벗을 얻을 수도 없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행복해 지려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믿어야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어떤 연유가 되었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으며, 마음속에 지닌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지극히 인간적인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정서적인 문제나 대인관계를 기피하려는 태도는 자기 부정에 빠져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럴 때 벗이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벗의 존재는 각자의 인생에서 정서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벗만으로는 온전하게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 벗이 갖는 한계성이다.

그러나 종교는 모든 것을 다 제공 할 수는 없지만 벗이 줄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위안이나 행복을 줄 수 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짐으로서 일정한 평온과 행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건전한 종교생활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초월성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사랑과 희망을 품도록 하고, 자기절제를 하게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치와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반드시 종교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지향하는 덕목인 초월적 선(善)을 지켜내려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꾸려가려면 진정한 벗과 진정한 선을 지향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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