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한비자'의 교훈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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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 '한비자'의 교훈 따라야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10.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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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고운석= 이 세상의 지배자는 힘에 의해서 지배하는 것이지 세론(世論)에 의해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힘을 사용하는 지배자는 세론이다. 힘이 세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한데 '한비자'의 교훈은 다르다. '조보(造父)가 밭을 매고 있는데, 한 부자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말이 놀라서 가려고 하지 않자, 아들은 말을 끌고 아버지는 수레를 밀며 조보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보가 농기구를 챙긴 뒤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 채찍을 드니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조보가 말을 다스릴 수 없었다면 힘을 다해 수레를 밀더라도 말을 가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TV에서 보면 골치아픈 소나 말, 개 등을 전문가가 와서 쉽게 다스리는 장면을 보는데,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가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책 '한비자'의 한 대목이다.

주나라 때 말을 잘 몰기로 유명한 조보의 일화를 들어 정치를 말했다. 나라를 수레에, 권세를 말에 비유했다. "방법이 없이 다스리면 몸을 수고롭게 하더라도 나라는 혼란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방법을 얻어 나라를 다스리면 몸은 편안한 곳에 있으면서 제왕의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비의 엄중한 가르침이다. 자연스레 우리나라 정치를 떠올리게 된다. 정치 지도자들은 말을 모는 게 아니라 수레를 밀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표류하고 있다. 야당은 내분에 휘말려 정치 본연의 역할은 고사하고 당장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청와대와 여당도 아무런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기능이 정지됐다. 국내외 정세는 각종 현안들이 제대로 풀리는 게 없는데 불안정 요인은 속출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삼국시대에 제갈량이 죽으면서 후주(後主) 유선에게 읽도록 했다는 '동양의 제왕학교과서'를 들춰본 이유다. 한비는 이 책에서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목표를 둔 법치주의 정치질서를 제시한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정치학이다. "상은 후하고 믿음이 있게해서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도록 해야 하며, 벌은 엄중하고 확실히 실시해 백성들이 두려워하도록 해야하며, 법은 통일시켜 변하지 않게 해서 백성들이 잘 알도록 해야한다.

" 한비 법가사상의 핵심이다. 사람들이 옳은 일을 행하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공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벌을 줘서 나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비는 인의를 앞세운 유가의 도덕정치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인(仁)이고, 형을 집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法)이다. " 인만으로는 백성을 다스릴 수 없으므로, 정치에서는 사적 윤리를 떠나 공적 도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행위, 즉 공적인 행위는 사적인 행위와는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라는 영원히 강성할 수 없고 영원히 허약할 수도 없다. 법을 받드는 사람이 강하면 나라가 강해질 것이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그 나라도 약해질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를 빗대어 한 말로 들린다. 2200여년 전 사상을 지금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한비 자신도 "시대가 다르면 일에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다만 뭔가 배울만하기에 고전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한비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정치적 현실주의다. 정치권이 현실에선 무용한 원칙이나 도덕주의만 고수하면서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정치적 혼란을 부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낡은 관습만 고수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안된다. 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인 것 같아 국민은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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