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출근길, 한결같이‘사고없는 하루’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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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출근길, 한결같이‘사고없는 하루’ 기도”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11.0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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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근 담양소방서장
젊은 목숨 앗아간 세월호침몰 가장 가슴아파
1800도 불구덩이 속 구조, 사명감 없인 못해
노후 장비·인력 부족…상황별 대응 애 먹어
정부·국회 ‘국가직 전환’ 논의…희망 갖는다

[담양=광주타임즈]진태호 기자=평균 21분 18초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출동하는 사람들, 30kg 장비를 짊어지고 희미한 외침 소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1800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국민의 92.9%가 꼽은 가장 신뢰하는 직업 1위.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 1950년대 말 미국 소방관 윌리엄 린에 의해 작성된 ‘소방관의 기도문’ 첫 구절이다.
혹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와 버금가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소방관들이 날마다 가슴 깊이 새기고 마음을 다 잡았을 ‘소방관의 기도문’에 이제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응답할 때다.
제 52주년 소방의 날을 맞아 정년 1년을 앞두고 33년 소방 공무원으로 살아온 담양소방서 정현근 서장에게 대한민국 소방관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위풍당당’ 대한민국 소방관이다.
▲팽목항 유가족과 눈물의 54일
1983년 전남 소방공무원 공채 5기로 ‘위풍당당’ 대한민국 소방관에 입문한 정현근 서장(59)은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고가 33년 공직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당시 전남소방본부 방호구조과장이었던 정 서장은 세월호 기간 동안 진도 팽목항에서 유가족들과 슬픔을 함께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했다.
전남 소방 총괄 책임자였던 정 서장은 당시 파견된 500여명의 소방관들과 함께 수습된 시신을 유가족에 인도하고 유가족의 건강 등 안전을 책임지며 54일간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 했다.

세월호에 관한 인터뷰 도중 정 서장은 서랍을 뒤져 손바닥 크기의 업무수첩 3권을 꺼내 보였다.

줄을 맞춰 빼곡히 쓰인 각종 기록들이 얼핏 보더라도 사건 규모와 사태의 심각성 등 당시 상황을 대변하는 듯 했다.

수첩 내용을 기사화 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중요사항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며 정중히 거절한 그는 한동안 수첩만을 뒤적였다.
한 참 후에 입을 뗀 정 서장은 너무 안타까운 청춘들이 희생됐다. 선장의 대피 명령만 있었더라도 전원 구조도 가능했을 것이다며 골든타임을 다투는 사건에 지휘관의 역할과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서장은 몇날 며칠을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차디찬 바닷속에서 나오라’며 절규하는 광경이나 아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아이들이 평소 좋아했던 음식을 차려놓고 눈물을 흘리다 실신하는 광경을 보면서 자식을 둔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당시 ‘윗분들 접대하기 위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등 ‘오해’에서 비롯된 오보로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곤혹을 치렀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 분들이 노고를 인정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소방관의 삶 ‘트라우마’의 연속
정 서장은 저를 비롯해 현장의 모든 분들은 지금도 당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굉장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방관의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트라우마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래서 일까. 그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해달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했다.

정 서장의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지인들도 밤 10시 이후에는 큰 일이 아니고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3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긴장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최소한의 배려인 듯 싶었다.

정 서장은 퇴직 후 33년간의 긴장을 청산하고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찾아오는 후배들과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그들의 인생 상담을 해주는 느긋한 삶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소방대원들은 사명감이 없으면 끝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소방대원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끝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지자체 형편따라 근무환경 극과극
그의 후배 소방대원 사랑은 자연스레 그들의 걱정으로 이어졌다.

정 서장은 소방관으로 부임 후 받은 첫 월급이 14만 9500원으로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쌀 3가마를 살 만큼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당시 소방관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했다.

지금은 월급 이외에 각종 수당뿐 아니라 복지나 처우도 좋아지고 있는 분위기다고 운을 띄운 그는 조심스럽게 소방대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이 정말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언론을 통해 소방공무원이 지자체 소속이다 보니 재정형편에 따라 소방인력은 물론 시설ㆍ장비의 편차가 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폐차기한이 넘은 구급차가 운영되거나 소방관이 자비를 들여 장비를 구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차라 정 서장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또 지자체는 정부로부터 총액인건비제의 인건비 교부금을 지원받고 있어 할당된 인원을 넘어선 인원에 대해서는 인건비 보조를 받을 수 없는 구조라 재정 여건이 열악한 시도는 자연스레 인력충원이나 노후화 된 장비를 교체할 수 없는 실정이고 말했다.

또한, 현재 구조구급장비는 국가에서 50% 지원하고 있지만 나머지 장비에 대해서는 각 지자체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장비의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스러움을 나타냈다.

이것이 바로 소방공무원들이 국가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10월 8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소방공무원의 처우개선이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여야는 모처럼 한목소리로 노후 장비 등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지적하며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을 요구했고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요구도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여야가 공동발의나 각각 발의한 4건의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법률이 계류돼 있고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단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폭넓게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7월 소방관 5명이 순직한 광주 헬기 추락사고 때는 “소방 인력과 장비를 보강해 사기를 진작시키겠다”고 약속한 만큼 꼭 이뤄지리라 믿는다.

▲목숨 내건 구조…장비 교체 절실
정 서장은 국가직 전환은 차 순위로 하더라도 우선 현장 최 일선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노후 된 장비 교체는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현장을 출동하다보면 장비나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할 때는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장성요양병원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언론은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것과 관련 ‘초기 화재진압 실패 아니냐’는 식의 기사를 쏟아냈지만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치 않았었다.

이게 현재 우리 소방 인력과 장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와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잘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정현근 서장은 “후배들에게 앞으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며 “‘위풍당당’ 대한민국 소방대원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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