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일본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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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일본의 양심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11.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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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논설위원 고운석 기자=지금은 11월이지만, 슬픈 그 날은 단풍이 곱게 익어가는 10월의 가을이었다. 곤히 잠든 조선의 새벽을 깨운 것은 일본군과 낭인의 무리였다.

이들은 일인과 내통한 역적 우범선(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이 궁문을 열어줘 들어오고 또 다른 야수들은 얼굴을 가린 채 사다리를 타고 경복궁 담을 기어올랐다.

칼을 휘두르며 삽시간에 궐내 북쪽 건청궁으로 내달았다.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 막아서자 권총으로 참살했다. 고종의 멱살을 잡고 구석으로 내동댕이쳤다. 울부짖는 세자는 상투를 잡아 질질 끌고 다녔다.

야수들의 목표는 ‘여우사냥’의 암호명이 붙은 명성황후였다. 이들은 궐내에 숨어있던 명성황후를 찾아 내 잔인하게 살해했다. 서너 번 칼질을 한 뒤 옷을 벗기고 시신에 불을 질렀다. 흩어진 유골은 근처 숲에 몰래 묻었다.

119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본 만행의 실상이다. 야수들은 범행에 앞서 흥선대원군이 있던 공덕동 별장으로 쳐들어가 조선 병사들의 옷을 벗겨 갈아입었다. 대원군을 강제로 교자에 태워 들러리로 세웠다. 왕실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위장하려는 얕은 술수였다. 하지만 이들의 만행을 똑똑히 지켜 본 ‘진실의 눈’이 있었다. 궁궐 안에 있던 미국인 시위대 고문관 다이 장군과 러시아 건축기사였다.

사건 발생 100년 후에 발견된 일본도의 칼집엔 ‘순식간에 여우를 해치우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에 파견된 일본 관리가 본국에 보낸 문서에도 ‘석유를 뿌려 불을 지르니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잔인함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사코 범행을 부인한다.

사건 다음 날 주한 외교사절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는 “조선 훈련대 병사들이 한 짓이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오”라고 발뺌했다. 일본의 기억상실증은 고질인 듯싶다.

이제는 세계가 다 아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까지 부인한다. 최근엔 ‘10대 소녀까지 강제로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외무성 홈페이지 글까지 삭제했다고 한다. 일본의 양심을 깨우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는 이달 11월이면 1154회째를 맞는다. 그들의 반성에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일본이 아무리 기록을 지운다고 해도 역사의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조선의 황후가 시해되던 날 서울 하늘에는 먼동이 트고 있었다. 설마 그 태양마저 손바닥으로 가릴 셈인가. ‘태양의 나라’ 일본의 모습이 너무 추해 보인다.

그런데 최근 이들 양심에 태양빛이 스며들었는지 한국과 일본의 의원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피해 당사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한일의원연맹은 회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한일의원연맹은 지난 2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제37차 합동회의를 열고 “한·일 양국 간 과거사문제의 상징적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올바른 역사 인식 아래 당사자들의 명예회복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조치가 취해지도록 양측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공동성명서에는 “양측은 고노 무라야마 담화정신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고노(河野·전 관방장관) 담화와 무라야마(村山·전 총리) 담화는 각각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일의원연맹의 한국 측 회장은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일본 측 회장은 누카가 후쿠시로 자민당 의원이 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4일 방한한 누카가 한일의원연맹회장이 양국 정상회담을 원하는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뜻을 전하자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 회복이 최우선”이란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이번 공동성명 채택에는 아베총리의 의중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연맹 관계자가 전했다.

한일의원연맹 회원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26일 이부키 분메이 일본 중의원 의장의 공식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 내년에 공동 기념사업회를 만드는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정 의장은 27일 아베 총리도 만났다. 이 때 총리의 반성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은 일본의 또 다른 야심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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