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섬 ‘장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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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섬 ‘장산도’
  • 광주타임즈
  • 승인 2015.06.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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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최남단에 위치 원해(遠海) 길라잡이 역할
해양성 기후로 쌀 등 농작물 재배 천혜의 조건

갯벌생물 낙지와 새우양식 등 주 소득원 부각
독립운동가 장병준의 고향…생가·묘소 보전
토속신앙·노동가 등 섬 마을 고유풍속 계승

[신안=광주타임즈]서영서 기자=장산도는 새우 양식 어가의 증가로 출하시기에 맞춰 2013년도에는 제2회 신안왕새우 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날 왕새우 축제와 함께 섬 전체의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는 대성산에서도 제12회 전국 섬 등산대회도 열렸다.

‘쉬엄쉬엄 느릿느릿, 자연을 즐기고 느끼는 아름다운 산행’이란 주제로 등산대회는 장산 다목적광장을 출발해 대성산 입구→대성산→앤두 전망대 →할미해변→다수마을→통두마을→목교까지 총 9.8㎞ 구간 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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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도는 국도2호선의 기점이다. 또한 섬이 섬으로부터 보호 받는 형국이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엔 숱한 섬들이 등장하는데 장산도 역시 ‘발음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고요한 밤이면 율돌목의 소용돌이치는 물 울음소리가 들리는 섬이라고 해서 발음도라 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후 장산도를 찾아 16일간 머물면서 지형 지세를 꼼꼼하게 검토한 까닭도 기습타격 이후 완벽한 은폐를 위한 최적의 섬으로 장산도를 꼽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산팔경은 장산의 아름다운 명승지 8곳을 칭송한 것이다. 장산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들리는 곳 중 하나가 다수리 해안 도로이다.

앤두에서 두두리를 잇는 해안도로로 장산면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짙푸른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마음부터 상쾌해지는 곳이다.

주민과 관광객을 위해 휴식공간인 정자와 운동시설을 설치하여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경치를 만끽하면서 자전거 라이딩 장소로 최고이다.

장산도는 노거수림, 백제고분 등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재가 많으며 농경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풍습이나 토속신앙이 자연스럽게 예로부터 형성된 섬이다. 이러한 향토문화의 밑바탕에서 생겨난 민요가 유명하다.

우리 선조들은 그 어려웠던 세월, 노래를 통해 울고 웃고 하면서 고단한 삶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살아왔다. 예향의 고장답게 장산 들노래와 씻김굿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타지역 전국 각지에서 많은 학자 및 학생들, 장산도를 내방한 관광객들 또한 무형문화재에 대해 듣고는 전수관에서 공연 시연을 통해 민속 예술을 전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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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산들 노래

장산도는 섬의 절반이 농지로 김 등 일부 양식어업을 하는 마을들이 있지만 농사가 주업이다.

모내기철에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는 장산도들노래는 이 고장에서만이 부를 수 있는 특유한 가락으로 각 장마다 다양한 가락에 변화가 있고,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넘어가는 구성진 들노래다.

농요의 본래 특색은 경쾌하고 박진감이 있다고 하지만 장산들노래는 경쾌하면서도 외로운 섬마을의 애수적인 한이 서려 있고 내면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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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 씻김굿

신안씻김굿 장산도와 비금·도초 지역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무당이 주관하여 치루는 종교적 제의다.

씻김굿은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무속의례의 하나로 망자의 혼을 씻어주는 동시에 죽음을 마주한 가족들을 달래주는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

신안씻김굿은 인근지역인 진도씻김굿과 달리 오구굿이 있고 또 같은 절차라도 사설에 차이를 상당히 보이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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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창리 석실고분

고분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았던 지배층의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장산도의 아미산(해발 142.5m) 동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1966년 3월에 마을 청년들이 회관을 세우기 위해 흙을 채취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무덤은 두께 30cm 내외의 두꺼운 판자형태의 돌을 다듬어 짜맞추고, 돌틈에는 흰 흙과 조개가루를 섞어 메웠고, 석실바닥은 현재 진흙이 깔려있으나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백제가 수도를 사비로 옮긴 후인 6세기중엽~7세기 초에 주로 지배층이 사용했던 무덤으로 추정되고 이러한 석실분이 조사된 사례가 많지 않아 백제석실분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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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창리 노거수림

이 숲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기다랗게 뻗어 있으며 숲의 길이는 352m이고 팽나무 63, 곰솔 8, 주엽나무 12, 가죽나무 4, 예덕나무 2그루 등 101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숲의 조성 유래는 사창마을에 양곡보관 창고가 있어 이 지역 여러 도서의 양곡을 보관하는데 왜구가 침입하여 도적질을 하므로 양곡보관 창고를 은폐하기 위해 위장 숲으로 조성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도창마을의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조성되었다는 설, 그리고 풍수지리설로 도창 마을이 솥의 형국이고, 마을 앞에서 보았을때 이 숲의 뒤로 보이는 아미산(배미산)이 말(斗)에다 곡식을 가득히 부어 놓은 형으로 쌀과, 보리 등 식량에 비유되며, 마을 앞 저수지는 식수를 뜻하므로 아미산의 쌀을 저수지 물로 씻어서 마을 형국인 솥에다 밥을 할 때 필수적인 것이 땔감인데 이 숲이 땔감 구실을 해야 마을이 번창하다는 풍수지리학설을 믿고 우리 선조들이 조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대리 고인돌

도창리로부터 장산중학교를 지나 아미산(배미산) 남쪽 언덕을 넘어 해안쪽으로 약 800m쯤 내려가면 평탄지가 바다와 접하고 있는데 이 평탄지에 2기의 지석묘가 남북으로 약 30m 거리를 두고 있다.

북쪽의 것은 남북방향의 상석에 그 크기는 장축 365㎝, 단축 305㎝, 두께 80㎝의 부정원형을 이루고 있다.남쪽은 땅에 닿고 북쪽은 지상에서 1.4m 높이 위로 들려 있고, 하부에는 지석이 1개 받치고 있다.

남쪽의 것은 상석의 크기가 장축 200㎝, 단축 170㎝, 두께 50㎝이고 형태는 원형에 가깝다.

◆ 독립운동가 장병준 생가 및 묘소

장병준(1893~1972)선생은 장산면 대리에서 출생하여 1919년 무안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일경의 체포령이 내리자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의정원 재무부차장으로 활약했고 1920년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3·1운동 1주년 기념식 때 서태석, 표성천, 박복영, 고재빈 등과 유달산에 태극기를 꽂고 만세를주동했다가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7년 신간회 전남도지회 부회장겸 도대표 의원을 맡았고 광복후에는 한민당 광주지부위원장에 피선되었고 1957년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묘소는 대리 마을 앞 선산에 위치했으나 2006년 현충원으로 이장되어 현재는 가묘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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