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이 전하는 심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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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이 전하는 심청 이야기
  • 광주타임즈
  • 승인 2015.09.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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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은 동양사상 근간인 유학에서 ‘모든 행실의 근본’규정
내달 8~11일 섬진강기차마을 일원서 ‘제15회 곡성심청축제’

[곡성=광주타임즈]홍경백 기자=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서민가정 안방구석에는 필사본 ‘심청전’ 한 권씩이 있었다.

서민여성들이 ‘심청전’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속에 눈물이 흐르도록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괴롭고 슬플 때 한 번 목 놓아 울어버리면 무한한 위안을 받고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데, 심청이야기 속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이 절로 쏟아지도록 하는 카타르시스적 장치가 많이 있다.

‘심청젼 필사본’ (작자·연대 미상)심청이야기는 고대 효행설화가 바탕이 되고 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 관념과 용신숭배(龍神崇拜) 사상 등이 영향을 미쳐 줄거리가 형성되었다.

판본(板本) 소설로는 서울에서 판각(板刻)된 경판본(京板本), 전주에서 판각된 완판본(完板本), 그리고 안성에서 판각된 안판본(安板本)까지 간행되었고, 후대의 신 활자본으로도 여러 서관(書館)에서 다투어 출판했다.

또한 판소리 사설로는 신재효(申在孝) 판소리 사설집에 실린 것을 필두로, 여러 명창들이 나름대로의 바디를 만들어 특유의 득음으로 구연(口演)해 서민 여성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고대 설화 중 심청이야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설화는 ‘삼국사기’ 권5에 실린 연권(連權)의 딸 ‘효녀지은(孝女知恩)’ 이야기인데, ‘심청전’의 눈물은 이 설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은은 외동딸로 장님인 홀어머니를 봉양하느라고 나이 32세가 되도록 시집도 못 간다.

남의 집 품팔이를 하거나 구걸을 하여 홀어머니를 봉양했지만 도저히 좋은 음식을 마련해 드릴 수 없자, 마침내 부잣집에 종으로 자기 몸을 팔아 쌀 10여 석을 받아 그 집에 맡겨두고, 일을 마친 다음 조금씩 가지고 돌아와 모친께 기름진 쌀밥을 대접했다.

이러고 며칠 지나니 모친은 딸에게, “전날은 밥이 거칠어도 맛이 있고 마음이 편하더니 며칠 전부터 밥이 기름지고 좋으나 맛이 전만 못하고 칼로 가슴속을 오려내는 것같이 아프니 웬일이냐?” 하고 물었다.

그래서 사실을 알려 드리니 모친은 자신 때문에 딸을 남의 집 종으로 팔리게 했으니 죽는 것만 못하다고 하면서 통곡을 했고, 딸도 함께 크게 울어 그칠 줄 몰랐다.

이어 모녀의 통곡소리를 들은 화랑(花郞) 효종(孝宗)이 사실을 알고는 낭도들과 함께 곡식을 내어 도와주었고, 임금이 알고 집과 곡식을 하사하면서 부역도 면제하고 종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며, 그 마을을 ‘효양방(孝養坊)’으로 지정하여 표창해 주었다.

효행에 대한 보상(報償)을 명시한 내용이다.

효행은 동양사상의 근간인 유학(儒學)에서 모든 행실의 근본, 즉 백행지본(百行之本)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보상은 논의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많은 효도 얘기에서 보상을 결부시키고 있는 것은 효행이 결코 쉽지 않으므로 효를 실천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한편, 지은이야기에 대하여 효도의 본질 문제를 언급한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 권5에 ‘빈녀양모(貧女養母)’라는 제목으로 지은이야기를 약간 다르게 표현해 싣고는, 딸이 울면서 ‘구복(口腹)’의 봉양만 생각하고 ‘색난(色難)’을 놓쳤다고 한탄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구복’은 좋은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이며, 심청이야기와는 깊은 관련이 없다. 하지만 ‘색난’은 부모 얼굴을 항상 살펴 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데 이런 효도는 정말 어렵다는 뜻으로, 심청이야기와 깊이 연관되어있다. ‘색난’이란 말은 논어에서 공자(孔子)가 효도를 정의한 말인데 효의 근본을 의미한다.

소설이나 판소리 사설의 심청이야기는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눈먼 부친을 효도로써 봉양하다가 더 큰 효도를 위해 심청이 물에 빠져 죽는 효행단락이 있고, 이어지는 단락에는 부친이 눈을 뜨는 부처님의 영험 얘기와 함께 심청이 다시 살아나와 황후가 된다는 효행 보상 이야기가 합쳐져 있다.

첫 단락에서 심청이 당면한 상황은 몸을 팔아 죽지 않는 한 공양미 300석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공양미 300석을 시주한 다음 눈먼 부친을 두고 죽었으니 부친은 딸을 팔았다는 죄책감에 매우 괴로워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심청은 부친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색난’에 비추어 볼 때 효도가 되지 못한다고 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면서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지 못한 채 좋은 음식만 마련하여 잘 모셨을 경우, 인간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자인 부처님을 속여 앉은뱅이가 될 것이라면서 탄식하는 부친의 괴로움은 몇 갑절 더한 고통에 해당한다.

이 고통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효녀 부친이라는 찬양을 받으면서 딸을 팔았다는 죄책감을 갖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부모에게서 받은 몸이니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효행의 으뜸으로 여겼고, 이를 실행한 심청이야말로 ‘색난’의 효도를 다했다면서 크게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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