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무장헬기 광주 투입 잇단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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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무장헬기 광주 투입 잇단 증거
  • 광주타임즈
  • 승인 2017.01.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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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항공여단 상황일지 첫 공개
기관총 장착 가능 500MD 헬기 7대 출동 사실 담겨
임무수행 기록, “헬기사격 有” 목격자 진술과 일치
“유리한 자료만 공개 가능성…원본 여부 등 밝혀야”

[광주=광주타임즈]박선옥 기자=5·18민주화운동 때 광주에 코브라헬기 AH-1J 2대, 경공격형헬기 500MD 22대, 수송헬기 UH-1H 11대가 투입됐다는 육군 1항공여단의 상황일지가 공개됐다.

상황일지에는 광주시민 다수가 헬기사격을 목격했던 1980년 5월21일, 기관총을 장착할 수 있는 500MD 헬기 7개가 광주에 출동한 사실이 담겨있다.

◇ 1항공여단 상황일지 첫 일반 공개

24일 5·18연구소 김희송 연구교수가 공개한 육군 1항공여단 상황일지에는 1980년 5월18일부터 5월30일까지 날짜별 상황과 조치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상황일지는 지난 2005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된 것으로 기록됐다.

문서 앞에는 '육군 1항공여단 작전 지원 내용'이 요약돼 있다.

'작전 지원 내용'에 따르면 1항공여단은 1980년 5월14일부터 5월30일까지 광주와 전남 등 17개 지역에서 31항공단과 61항공단의 코브라헬기 AH-1J 2대, 경공격형헬기 500MD 22대, 수송헬기 UH-1H 11대, 군인 108명을 충정 작전에 투입했다.

이 기간 운항된 항공기 대수는 230대, 비행시간은 827시간이었으며 전투병력 2910명, 보급품 187t을 실어 날랐다.

군은 '무력시위, 지휘 정찰, 특수 작전, 공중 방송, 깨스(가스) 및 전달 살포 등의 다양한 항공 작전으로 지상 부대 도로 차단의 제한 사항을 극복하고 작전의 속도를 촉진, 광주사태의 조기 수습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보고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국방부 과거사위에 제출된 1항공여단의 상황일지가 일반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5·18 당시 항공대 운영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상황일지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관총 무장 가능한 헬기 대거 투입

날짜별 상황일지에서 항공기 출동 준비 지시가 처음 내려진 것은 5월18일 오전 9시42분으로 기록돼 있다. 61항공단에 10분 내 6대, 30분 내 14대가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시켰다.

다음날인 19일 오후 4시20분에는 31항공단에 M-5(가스 살포기)를 실은 500MD 헬기 2대의 출동 대기를 지시했다.

일지 속에 500MD 헬기가 광주로 투입된 것은 5월21일이었다.

당일 오전 5시10분께 최루 가스를 채운 502항공대 소속 500MD 5대가 광주로 출발, 오전 6시25분 도착했다.

이날 오전 11시15분에는 수송헬기 UH-1H 10대가 광주로 출발, 오후 1시10분께 도착했다.

UH-1H 헬기는 500MD와 달리 헬기 양편에 M60 기관총을 사격할 수 있는 거치대를 설치할 수 있는 기종이다.

전일빌딩 10층의 총탄 흔적을 분석,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만에 공식화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공식 보고서를 통해 '탄흔의 크기로만 보아서는 M16 소총의 가능성을 우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UH-1H 헬기의 양쪽 문에 거치된 M60 기관총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 오후 3시57분께 31항공단 소속 506항공대의 500MD 2대가 광주에 투입됐다.

이후 500MD 헬기와 UH-1H 헬기는 광주로 파견과 복귀를 반복한다.

◇ 시민 상대로 항공작전 펼친 계엄군 헬기

5월21일 광주에 도착한 헬기 중 일부는 곧바로 항공 작전에 나섰다.

오후 2시20분께 헬기 2대가 임무수행을 완료한 것으로, 오후 2시34분부터 오후 3시10분까지 또 다른 헬기가 임무를 수행 중이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임무를 수행한 헬기 기종과 구체적인 임무가 무엇이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헬기 도착 시간과 임무 수행 중이었던 기록을 종합하면 '21일 오후 1∼3시 사이 호남동성당 등 금남로 주변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5·18 직후 조비오 신부, 미국인 목사 피터슨씨, 수십 명에 달하는 목격자 등의 진술과 일치한다.

특전사령부가 작성한 '광주지역 소요 사태 진압 작전' 보고서에는 같은 날 오후 3시께 '20사단 병력 헬기로 도청 투입 실패'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헬기를 사용한 군사 작전이 있었다는 의미다.

5월22일에는 오전 2시15분께 코브라헬기 2대가 광주에 도착, 이후 작전에 투입됐다.

5·18 당시 육군 1 항공여단 31항공단 103 항공대대장으로 근무했던 이모(당시 39세)씨는 지난 1995년 5월15일 서울지방검찰청 926호 검사실에서 "전교사 작전 통제를 받았고 김순현 장군으로부터 5월22일 광주천을 따라 위협사격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군의 사격 명령이 있었다는 증언이었지만, 이씨는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는 시민들의 증언이 나온 5월24일 상황 일지 속에도 '500MD 임무 개시' 기록이 남아 있다.

◇ 첫 헬기 투입 등 누락됐나…여전히 남는 의문

최근 육군 1항공여단 31항공단 506항공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부대에서 근무했던 병사들은 "'캘리버 30' 기관총을 장착한 500MD 헬기가 매일 5~6대씩 광주에 투입됐다"고 증언했다.

이들은"UH-1H 수송 헬기가 추락했다는 말을 80년 5월 당시 작전에 투입된 조종사로부터 직접 전달받았다"고도 밝혔다.

실제 1항공여단 상황일지에는 5월29일 오전 9시45분께 무등산 인근에서 7공수여단 병력 수송 임무를 하고 있던 UH-1H 헬기가 전복됐다는 사고 기록이 담겨있다.

적어도 1항공여단 상황일지를 통해 이들의 증언이 어느 정도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5월 19~20일 헬기를 몰고 광주에 투입됐다는 헬기 조종사들의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제1항공여단은 101항공대를 비롯해 201·501·502·503·504·505·506항공대 등 모두 8개 항공대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1·201항공단도 광주에 헬기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황일지는 502·506항공단을 중심으로 기록돼있다.

이에 대해 5·18연구소 김희송 연구교수는 "헬기 관련 군 마지막 자료로 추정된다. 다만 군 자료에는 100% 진실이 담겼다고 볼 수 없다"라며 "자신들이 유리한 자료만 과거사위에 공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실제 육군 본부와 예하부대에서 보고한 내용에 장비와 병력의 숫자 차이가 있다"며 "또 임무 수행 완료라고만 기재돼 있을 뿐 어떤 임무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과거사위에 제출한 자료의 원본이 따로 있는지 등을 더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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