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관·옹관묘 100여기...100년 걸쳐 조성 추정
기원 후 3~4세기 고분 50여기를 발굴한 대한문화재연구원은 “목관묘, 직장묘(토광묘), 옹관묘(독무덤) 등 100여기가 약 100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해남반도 남서쪽 바닷가에 맞닿은 산 사면에 있는 고분은 봉분 주위로 사다리꼴 도랑(周溝)을 두른 마한의 전통 무덤 양식이다. 중앙에는 목관묘나 옹관묘를 안치하고 외곽에 옹관묘와 목관묘, 직장묘 등을 추가로 매장했다. 대부분 도랑을 공유하면서 맞물리게 축조, 같은 집단의 공동 묘역이 군데군데 조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목 짧은 항아리(短頸壺), 겹아가리 항아리(二重口緣壺), 양이호(兩耳壺), 조형(鳥形) 토기 등과 함께 환두도, 쇠도끼(鐵斧), 덩이쇠(鐵鋌), 철도자 등이 출토됐다. 시신의 목에 건 구슬류 등 200여점 이상의 부장유물도 수습됐다. 이들 부장유물은 고분이 기원 후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한다. 해남반도에서 같은 시기에 조성된 해남 부길리옹관묘, 분토리고분군, 신금취락 유적 자료와 양상이 비슷한 유물들이다.
백포만에서 철기를 매개로 대외교류에 참여한 마한 해상세력이 해남 안호·석호리 대지유적에 집단 고분군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침미다례 집단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다. 침미다례는 해남반도에 터를 잡은 마한의 주요 세력이다. 서기 369년 백제 근초고왕의 남정(南征) 과정에서 소멸했다. 안호·석호리 대지유적 고분군의 소멸 시기가 이 기록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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