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만을 쫓는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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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만을 쫓는 속마음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7.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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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최수호 논설위원 = 인간은 흔히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흑백논리로 양분하여 세상을 바라본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좋아하는 것’ 아니면 ‘싫어하는 것’만이 존재하게 한다.

그런데 심각한 사실은 인간이 바라본 세상은 ‘선하고 좋아하는 것’은 별로이지만 ‘악하고 싫은 것’은 무수히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니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편향된 세상을 살게 되어있다. 더욱 큰 문제는 부정적으로 바라본 세상을 긍정으로 환원하는 변신은 거의 일으키지 못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본 세상을 부정으로 전환하는 변질은 언제든 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긍정 보다는 부정을 선호하려는 부정우성기질을 발휘하는 불편한 진실에 끌려가는 편향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환경이 미치는 감정에 따라 긍정에서 잔인하게 부정으로, 부정에서 기민하게 긍정으로 변신하는 과감한 도피행각을 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본 세상이었을지라도 부정적인 징조가 보이면 상대의 가슴에 칼질하는 배신행위를 필사적으로 감행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상황이 부정적이면 애정의 감정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지고 적대적인 모습을 표독스럽게 드러낼 뿐이고, 정황이 긍정적이면 어떤 명분을 내세워서라도 적개심은 억제하고 당연한 듯이 우호적인 애정표현만 한다.

그래서 옛 선현들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개탄하곤 했다.

그러함에도 한 마음 속에 긍정적인 애정과 부정적인 적개심이 늘 공평하게 공존하는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 동기는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차적 에너지는 자기보호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의 흐름은 언제나 본능적으로 자기보호를 위한 방어과정으로 잡히고 만다.

특히 세상이 자신을 파괴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면 자기생존을 지켜내려고 잔인하게 배신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기도하고, 자기존립의 유지를 위해 터무니없는 변명이나 명분을 앞세운 공격적인 자세를 강구한다.

그렇지만 각자의 내면에서는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구체적인 목적이 들킬까봐 공격행위에 불안해하는 두려움이 늘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본능적인 자기 생존의 욕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자기보호를 위해 파괴적인 공격성을 선호하는 충동적인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를 체득하는 과정이 인격수양이며, 불안한 생존욕구를 극복하고, 강렬한 성취욕을 순화하고, 위태로운 자기방어의 불안을 해소할 적절한 때와 방법을 호시탐탐 노리는 지혜습득의 여정이 우리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대상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습득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지식정보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뭔가를 경험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이미 저장된 정보들과 연관되는 마음작용이 일어난다.

결국 지금의 마음이란 타고난 속성, 벌써 체험한 것들, 바로 마주하는 대상이 어우러지면서 재구성된 인식작용이 반영된 것이다.

마음의 흐름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나쁜 대상은 배척해내려는 공격 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배타적인 마음은 늘 강하고 호의적인 의도는 언제나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배제대상은 약화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면서 좋은 마음마저 나쁜 쪽으로 변질시켜버리기까지 한다.

이처럼 잠재된 본능적 욕망에 따라 잘 못 형성된 의식이 항상 마음에 반영되기 때문에 뭔가를 대하면 늘 객관성이 결여된 인지능력으로 채색된 현실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 결과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별개로 분별하는 내면 작업에 의해 자연스럽게 왜곡된 자기방어 현상을 만들어내고 만다.

그러니 본능적인 자아의식과 지금의 접촉 물과의 인식통합과정을 거치면서 본성이 지배하는 무의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항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늘 분노와 두려움으로 뒤범벅이 된다.

이처럼 본능이 지배하는 무의식은 매우 이기적이어서 자아적 욕망만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순수한 내면의 진실까지도 파괴하고 만다. 그러므로 외적 자극과 내면 의식이 하나로 통합되는 동질화가 이루어지려면 자기 내면의 본능적 욕망이 억제되고 약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성이 지배하는 인식과정의 활성화를 위해 “마음을 비워라.” “욕심을 내려놓아라.” “하심 하라.” “방하착하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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