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돌아오는 마을로 가꿔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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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돌아오는 마을로 가꿔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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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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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용암마을 26살 국내 최연소 김유솔 이장
경로당서 업무보며 어르신들 민원해결사 톡톡
‘완망진창’ 단체 만들어 청년마을 사업 추진도
완도 용암마을 김유솔 이장./본인 제공
완도 용암마을 김유솔 이장./본인 제공

[광주타임즈]=“우리 마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 더 멋지게 섬을 가꿔가고 싶어요”

흔히 마을 이장을 두고 ‘대통령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주민들의 온갖 대소사를 챙겨야 하고, 그들의 모든 이야기와 고충을 들어줘야 하는 쉽지 않은 자리다.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용암마을은 그런 이장의 역할을 20대 젊은 여성이 맡고 있다.

주민 평균 나이 68세인 용암마을의 김유솔(26)씨는 올해 벌써 3년 차 이장. 마을 어르신들의 예쁨을 독차지 하고 있는 귀여운 손녀이자, 민원 해결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22년 1월 용암마을 이장이 되면서 당시 ‘대한민국 최연소 이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또 아무나 시켜주지 않는 게 마을이장. 처음 이장 선거를 두고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장 선거를 앞두고 전 이장님께서 ‘젊은 사람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으면 좋겠다’며 출마를 제안하셨습니다. 완도군에서 하던 도시 재생에 참여해 활동했는데, 그 모습을 좋게 보셨나 봐요. 그렇게 용암마을에 오게 됐고, 이장이 됐죠.”

김씨는 “저 외에도 이장 후보가 한 명 더 있었다”며 “제가 출마를 한다고 하니 ‘젊은 사람이 한다는 데 우리가 도와야지’라며 출마를 접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안한 시선은 여전했다. 마을 출신이 아닌 데다, 20대 여성이 마을 이장을 한다는 게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못 미더운 구석이 있었을 터였다.

사실 용암마을은 김 이장의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살던 마을이다.

김 이장은 “어르신들께 이 마을에 우리 외할아버지가 살았다고 말씀드렸더니 ‘누구냐’고 물어보더라”며 “성함을 알려드리니 ‘아 그 집 사람들 괜찮지’라고 바로 마음을 여시더라”고 웃었다.

처음 이장이 되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해야 할 업무에 대해서도 몰랐었다.

“첫 해 아무것도 몰라 서툴기만 했죠. 어르신들을 만나러 경로당에 가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길 기다리시는 분이 많았어요. 왜 일이 있을 때만 오냐고 서운해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경로당에서 업무를 보고 어르신들과 함께 밥도 해 먹으면서 거의 살다시피 합니다.”

지금은 베테랑이 다 된 김 이장은 아침 일찍 눈을 떠 업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가로등은 잘 켜지는 지, 잡초가 너무 자라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필요한 경우 군에 민원을 넣어 해결한다. 경로당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유도 어르신들의 고충과 민원을 듣기 위해서다.

청년단체 '완망진창' 팀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김유솔(오른쪽 두 번째) 이장. /본인 제공
청년단체 '완망진창' 팀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김유솔(오른쪽 두 번째) 이장. /본인 제공

김 이장이 오고 나서 마을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그는 마을 한글학교에서 글을 배운 마을 어르신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알려줬다. 손주나 자녀들에게 문자를 보낼 줄 알게 되면서 어르신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꽤 뿌듯했다고 한다.

이밖에 어르신들의 휴대전화가 고장 나거나, 행정업무를 위해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때 김 이장은 어르신들의 ‘슈퍼우먼’이다. 자식 손주들이 모두 객지에 나가 도움을 받지 못해 속을 앓았던 마을 어른들에게 젊은 이장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른다고.

초보 이장 때 보내오던 우려의 시선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어르신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제가 메고 온 작은 가방이 늘 가득 차요. 찐 옥수수나 감자, 약과 같은 간식도 챙겨주시고, 감이 열릴 때는 집으로 감을 따다 가져다 주시고는 합니다. 아무래도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제가 손녀처럼 예쁘기만 하나 봐요.”

김유솔 이장은 외가와 친가 모두 완도다. 완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로 떠났다. 서울에서 디자인 일을 하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2019년 완도에 ‘솔진관’이라는 사진관을 열었다. 솔진관은 자신의 이름인 유솔과 사진관이라는 뜻이다.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완도 어르신들의 장수사진 촬영 봉사도 열심히 했다.

또 ‘완망진창’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청년마을 사업도 하고 있다. 다른 지역 청년들이 완도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한 달 살기’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무료로 거주하면서 대신 완도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이나 공예품, 미술품 등 예술작품을 대가로 받는다. 한 달 살기에 참여했던 청년 일부는 정착하기로 하면서 이들과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저는 우리 용암마을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됐으면 해요. 현재 계신 어르신들의 뒤를 이어 활동할 수 있는 다른 세대를 우리 마을 안에서 만들고 싶습니다.”

김유솔 이장은 “지방소멸 위기 속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며 “그들이 다시 고향을, 완도를 찾아 올 수 있도록 계속해 멋지게 마을을 가꿔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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