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못들 정도로 체력소진
"납득이 이미지 부담없다"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에서는 다르다. 서늘한 눈빛의 살수로 왕(현빈)의 목을 노린다. 젓가락 하나로 사람을 해하고, 천연덕스럽게 수건으로 피를 닦아낸다. 월(정은채)과 남몰래 사랑도 나눴다. 날렵하게 칼날을 휘두를 때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목표물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서 ‘납득이’의 코믹함은 찾아볼 수 없다.
“‘납득이’를 벗어나기 위해 변신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을수라는 인물에 충실했을 뿐이거든요. 하지만 ‘납득이’와 간극이 워낙 크니까. ‘납득이’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저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납득이’잖아요. 사랑도 많이 받았고요. 부담을 가졌다면 제 역할을 능력치보다 더 못했을 거예요.”
‘을수’는 자의든, 타의든 ‘납득이’를 조정석으로부터 가장 멀찌감치 분리시킨 인물이다. 조정석은 이 영화가 개봉하고 세 번이나 극장을 찾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 일부러 그린 얼굴의 잡티까지도 다 포용했다. “분장했는데 검버섯을 뿌리더라고요. 제 얼굴을 봤는데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당혹스러웠어요. 다행히 화면에 비쳤을 땐 괜찮던데요? 을수가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인생의 역사가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만큼 고생도 컸다. 조정석은 한 달 넘게 비를 맞으며 구르고 넘어지고 하늘을 날았다. 칼을 날렵하게 휘두르는 것도 손목이 아릴만큼 체력에 부쳤다. “칼이 너무 무거웠다. 나중에도 힘을 아무리 줘도 칼이 들리지가 않았다. 커트하면 스태프들이 내 팔을 들어줄 정도”라는 것이다. “클로즈업을 진검으로 하니 무거웠던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죠.”
“촬영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카메라에 부딪히기도 했어요. 달려가는 신이었는데 속도를 줄였는데도 카메라에 부딪힌 거예요. 머리에 혹이 너무 크게 났어요. 다음날 병원 가서 혹 가라앉히는 주사도 맞았어요. 그래도 모서리에 부딪혔으면 찢어졌을 텐데 다행이죠.”
추위와도 싸웠다. “비가 와서 한 테이크 가면 모든 게 얼었다. 다시 녹이고 촬영하고의 반복이었다. 머리카락까지 얼어서 너무 추웠다. 너무 추웠다. 이런 상황에서 심각한 사고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정조와 맞대결하는 장면인데 나는 처마와 밖 사이에 걸쳐 있었다. 현빈이 맞춰주려고 내 앞에 서 있는데 처마 밑이더라. 부러웠다.”
“숙소에서 자고 나면 몸이 으스러지도록 아파서 힘들었어요. 대부분 아침에 촬영이 끝나 해가 뜨면 숙소로 들어갔거든요. 오후 한 두 시에 일어나 밥 먹고 네 시에 나와 분장하고 열 두 시부터 밤샘 촬영이 시작됐죠. 너무 힘들어서 낮에 오리탕, 장어 등 보양식을 챙겨 먹었어요. 집에 있던 홍삼도 다 가져왔고요.”
고생 끝에 낙이다. 조정석은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영화가요,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영화예요. ‘볼매’라고 하죠. 많이 봐주세요”라고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