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0주기 앞둔 팽목항, 먹먹함과 처연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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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10주기 앞둔 팽목항, 먹먹함과 처연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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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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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코앞…전국 추모 발길
‘이별 공간’ 팽목항에서는 답답함·한숨 여전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13일 오후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13일 오후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광주타임즈] “먹먹하다는 말 밖에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사흘 앞둔 지난 13일 오후 진도군 팽목항.

비탄과 통곡이 오래 전 떠나간 빈자리를 바닷바람이 몰고 온 잔잔한 파도소리가 메웠다.

추모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르면서 추모객들의 발소리가 늘었지만, 이날도 팽목항에서는 어느 누구도 말끝을 쉽게 잇지 못했다.

추모객들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먹먹함에서 비롯된 한숨만 깊게 내몰아 쉴 뿐이었다.

부모의 손을 꼭 잡고 팽목항 방파제를 걷던 한 여자 아이는 주머니에서 노란 천 조각을 꺼내더니 철제 봉 주변으로 향했다.

고사리 손에 쥐어진 노란 천 조각은 여러차례 서툰 매듭 끝에 어느새 어엿한 리본이 됐다.

아이로부터 리본을 건네받은 아버지는 말 없이 철봉에 리본을 묶은 뒤 아이를 업고 방파제를 걷고 또 걸었다.

상복처럼 검정 옷을 차려 입은 한 추모객도 맹골수도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궜다.

2014년 4월 16일을 되새기고자 이곳을 찾은 추모객들에게 녹청색 바다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말없이 일렁일 뿐이었다.

팽목항 주변 팽목기억관에서는 단체 견학을 온 학생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또래 나이 때 변을 당한 희생자들을 떠올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노란 리본에 ‘잊지 않겠습니다’ 등 글귀를 적은 학생들은 저마다의 팔목에 이를 묶고 팽목항으로 걷고 또 걸었다.

10년 전 이곳이 참사 희생자와 가족 사이 마지막 이별 장소였다는 흔적은 얼마 남지 않았다.

새빨간 등대와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진상규명’ 뜻을 담은 노란 깃발, 노란 리본 조형물만이 비극을 기억하는 수단으로 남았다.

방파제 바로 옆에는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 터미널이 새로 들어서면서 이곳은 더이상 추모객들만 찾는 공간이 아니게 됐다.

점점 ‘사람 냄새’나는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10년 전 짙게 드리운 비탄의 그림자는 처연함으로 변해 쉽게 걷어낼 수 없게 됐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신항 추모공간에서도 추모 분위기는 이어졌다.

선수 부분에 써진 빛바랜 ‘세월(SEWOL)’ 글자만이 한때 이 배가 세월호였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선체를 처음 보는 추모객들은 크기에 놀라고 처참하게 녹슨 모습에 안쓰러워 했다.

추모공간 입구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희생자 304명의 영정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두 눈에 희생자들의 얼굴을 아로새기던 그는 이윽고 눈을 질끈 감고 빠른 걸음으로 추모 공간을 빠져나왔다.

추모객들은 이루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먹먹함에 감히 말을 꺼낼 수 없다고 토로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이 먹먹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고도 덧붙였다.

대전에서 온 신소연(35·여)씨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복잡하다. 처음 오는 팽목항 분위기에 압도돼 거대한 슬픔에 짓눌리는 기분”이라며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기에 슬픔이 배가 되는 것 같다. 멈춘 진상규명 시계가 다시 돌아야 할 때”라고 했다.

전북 순창에서 온 홍준(16)군은 “학교에서 꾸준히 배우다보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식은 깊이 각인돼있다. 직접 팽목항 현장을 찾으니 마음이 크게 울적하다”며 “세월호와 관련해 학교에서는 주로 안전 위주 교육을 받아왔다. 참사 전개와 진상규명이 더딘 이유 등을 가르쳐준다면 더욱 의미가 클 것 같다”고 했다.

안산에서 온 양영진(56)씨도 “10년 사이 팽목항에는 여객선 터미널이 생기고 목포신항에는 컨테이너선이 정박한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멈춘 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뿐인 것 같다”며 “수 년도 아니고 10년이다. 10년이라는 세월에 담긴 먹먹함과 처연함은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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