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금과 유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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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금과 유병언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07.1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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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고운석 = 돈이 공약할 수 없는 만큼 강한 요새는 없다. 화폐를 쓰는 곳에서는 큰 사건이 터지면 현상금을 내걸고 있는데서 알 수 있다.

조선 명종 때 임꺽정, 고종 때 전봉준 체포에 현상금이 걸렸다. 19세기 미국 서부시대에 무법자로 유명했던 제시 제임스에게는 무려 5000달러의 현상금이 걸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현상금은 범인을 잡기 힘든 테러, 국제적인 마약거래 및 조직폭력, 살인 등 강력 범죄자 검거에 걸린다.

9·11테러 주범 빈라덴의 현상금은 처음에는 2500만 달러였지만 2004년 미 의회는 이를 5000만 달러로 올렸다.

한화로 500억이 넘는 거액으로 역대 최고 현상금이다. 미국 정부는 그러나 빈라덴 사살 후 결정적 제보자가 없었다며 현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2006년 처형된 사담 후세인에게는 2500만 달러의 돈이 걸렸다. 대형 테러 등을 제외한 일반 범죄 최대 현상금은 매들린이라는 4살짜리 영국 소녀 유괴범에 걸렸던 250만 파운드(약 43억원)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현상금이 높아지면서 이를 노리는 전문 직업도 생겼다.

소위 현상금 사냥꾼으로 불리는 사람들로, 이미 미 서부개척시대 때 등장했다. 제시 제임스 같은 무법자들을 잡을 능력도 정보도 부족했던 당시 보안관들은 현상금을 내걸고 이들에게 의존했다.

올초 개봉한 조선미녀삼총사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직업이 있었다.

최근에는 어엿하게 면허까지 갖고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 관타나모수용소 재소자의 대부분이 현상금 사냥꾼의 제보로 체포됐다고 한다.

\'돈\'의 위력 때문이다. 한데 조선 광해군 때의 \'강변칠우(江邊七友)\' 현상금은 달랐다.(일명 7서 사건)\'의 주범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이경준, 박치인, 박치의, 김평손은 고관들의 자제지만 서출(庶出)이라는 이유로 벼슬길이 막혀 세상을 증오했다.

이들은 소양강 근처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여주 일대에서 활동하는 상인들의 재물을 탈취해 쿠데타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에 앞서 \'강변칠우\'의 두목 박치의는 도성 내의 호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선조가 죽은 뒤 이들은 남별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몰래 죽이고 그 혼란을 틈타 군사를 동원해 조정을 전복할 계획까지 세웠다.

이들은 또 약탈한 재물을 이용해 조정의 핵심 인사들을 매수한 뒤 자신들이 직접 선전관, 내금위, 수문장 등으로 조정에 들어가 호걸 300명과 함께 국왕과 세자를 시해하고, 대비(大妃)로 하여금 자신들의 뜻대로 수렴청정하게 한다는 역모까지 구상했다.

하지만 박응서 등은 1612년(광해군 4년) 조령에서 은(銀)을 취급하던 상인을 죽이고 은 600~700냥을 약탈하다가 체포돼 살인죄로 조사를 받게 된다.

이후 \'강변칠우\'의 계혹은 모두 탄로가 났고 두목 박치우만 도망갔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잡혀가자 대부분의 양반들은 명문가인 후예들이 이런 일을 했을리 없다고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구명운동까지 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조정에서는 박치의를 체포하기 위해 고액의 현상금까지 내걸었으나 끝내 그를 체포하지 못했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철저히 숨겨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도 이때와 유사한 것 같다. 세월호의 실제 선주인 유병언씨가 검찰의 출두 요구에도 불응하고 종적을 감췄다. 검찰은 현상금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했다.

유씨가 시민들의 신고로 체포될 수도 있겠지만, 자진해서 출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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