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에 한숨은 농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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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에 한숨은 농촌의 위기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10.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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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논선위원 고운석=조선시대가 아니고도 흉년이 들면 초근목피도 부족해 많은 사람이 굶고 죽어갔다. 이렇다보니 굶주린 사람은 이성(理性)의 말을 듣지 않고 정의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어떤 기도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 태조 때부터 조선 숙종 46년(1720) 때까지의 일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는 \'조야첨재(朝野僉載)\'책에는 우리 조상들이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던 방식들이 여럿 실려 있다.

춘하추동 어느 때이든 갑자일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갑을병정(甲乙丙丁…) 순서인 10개의 천간(天干)과 자축인묘(者丑寅卯…) 순서인 12개의 지지(地支)를 천간지지(天干地支), 줄여서 간지(干支)라고 하는데 그 첫 번째 조합인 갑자일(甲子日)에 비가 오면 해롭다는 것이다. 즉 “봄 갑자일에 비가 오면 붉게 된 땅이 천리에 걸쳐 있고, 여름 갑자일에 비가 오면 배를 타고 시장에 가고, 가을 갑자일에 비가 오면 벼에서 싹이 나고, 겨울 갑자일에 비가 오면 까치둥지가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으로서 모두 흉년에 관한 조짐이다.

\'조야첨재\'에는 거꾸로 음력 섣달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들 조짐으로 여겼다. \'섣달에 눈이 와서 천지가 세 번 하얗게 되는 것을 보면, 농부가 껄껄대며 웃는다\'는 것이다. 동지 이후 세 번째 술일(戌日)에 지내는 제사가 납제인데, 납제 전에 세 차례 눈이 내려서 천지가 세 번 하얗게 죄는 삼백(三白)이 되면 풍년이 든다는 것인데, 이를 납전삼백이라고 한다. 그러나 농부가 껄껄대고 웃는다는 것이다.

중국 명(明)나라 때 학자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저술한 의서인 \'본초강목\'은 ‘납설’조에도 동지가 지난 후 세 번째 술일(戌日)인 납일 이전에 세 번 눈이 오면 보리농사에 아주 좋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본초강목\'은 조선 선조 재위(1567~1608년) 이후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고려 후기의 학자 이규보의 시 중에도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것은 \'본초강목\'의 영향으로 생긴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규보는 ‘무술년 정오 15일에 큰 눈이 내리다’ 라는 시에서 ‘밭이랑의 푸른빛을 볼 수 있다면 어찌 납일 전에 흰 눈이 오기만 기다릴 것인가’ 라고 노래했다.

조선에서는 동지 후 세 번째 미일(未日)에 종묘와 사직에서 납향이라는 큰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납평제라고 했기에 민간에서는 이날을 ‘납팽날’ 이라고 불렀다. 납향제를 미일에 지낸 것은 조선이 동쪽 방향인 동방에 있는데, 음양오행 중 목(木)이 동방에 속하기 때문에 나무 목(木)자가 들어가는 미일에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동방은 본디 곳간이 미방(未方)에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조선 사람들이 납향제를 얼마나 크게 중하게 여겼는지는 납향 때 내린 눈을 녹여서 살충이나 해독약으로 사용한데서 알 수 있다. 이를 납설수라고 하는데, ‘구급’편에는 갑자기 날뛰는 졸전광에 대한 처방 중에 “지룡(지렁이) 10여 마리를 문드러지게 갈아서 생강즙, 백하즙, 꿀을 각각 한 숟갈씩 넣어서 우물물을 타서 마신다.”는 처방과 함께 “납설수를 많이 마시게 한다.”는 내용도 있다.

납향 때 눈이 오면 풍년이 들 조짐이므로 그만큼 상서롭게 여겼던 것이다. 풍년 중에서 기장과 벼가 모두 잘 여문 것을 최고의 풍년으로 쳤다. 「시경(詩經)」‘주송(周頌)’ ‘풍년조’에는 “풍년에는 기장도 많고 벼도 많다.”는 구절이 있다. 그 주석에 “기장은 높고 건조하고 추운 곳에서 잘 되고, 벼는 낮고 축축하고 더운 곳에서 잘 되니, 기장과 벼가 다 잘 익었다면 모든 곡식이 다 잘 여문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곡식이 잘 되는 풍년이 최고의 풍년이다. 이런 해를 대유년(大有年)이라고 한다. 전북 남원 출신 의병장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 선조 19년(1586년)’에는 “이 해는 대유년이어서 무명 한 필 값이 쌀 두 섬에 이르렀다라는 구절이 있다.

올해 농사도 풍년이라는데, 농민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고 한다. 쌀 수확량이 많아져서 산지 쌀값은 하락하고, 정부의 쌀 관세화 발표에 농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농경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변신했다지만 풍년에 울상인 것은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과거 굶주린 시절을 생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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