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강간죄, 성문화 바로잡는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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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강간죄, 성문화 바로잡는 계기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5.2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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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편집국장 김미자 = 정상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 사이라도 남편이 폭력과 협박을 통해 강제로 아내와 성관계를 했다면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이는 파탄에 이른 남편과 아내 사이에 강간을 인정한 과거 판례를 넘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첫 ‘부부 강간죄’ 판결이어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법원은 "민법상 부부간에는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970년 대법원은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는 부부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43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또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객체(피해자)인 ‘부녀’에 법률상 아내도 포함된다고 봤다. 결혼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부부 관계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헌법에서 보장한 인권을 침해했다면 국가가 개입해 형벌을 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면 가정 붕괴가 가속화하고 이혼 소송 등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염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고 처벌해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부부 사이든 아니든, 기혼 여성이든 미혼 여성이든 여성의 존엄성과 성적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의 지적처럼 시대가 변했는데도 우리 사회에는 성폭행 성추행 등 성범죄가 갈수록 만연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언제든지 제압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남성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사회 지도층의 권력형 성범죄도 유독 잦다.

왜곡된 성인식과 그릇된 성문화는 여성과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안전과 품격을 위협한다. 툭하면 터지는 어린이와 여성 성범죄가 그것이고, 윤창중 사건도 그 연장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인식과 성문화를 바로잡는 출발점인 동시에 ‘인권’은 부부관계 등 어떠한 특수성보다 우선된다는 것을 법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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