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운석]260년 전 이맹휴에게서 배워야 할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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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운석]260년 전 이맹휴에게서 배워야 할 한국 정치
  • 광주타임즈
  • 승인 2016.08.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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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광주타임즈]성호 이익의 아들 이맹휴(李孟休·1713~51)는 천재로 이름났으나 부친보다 이른 영조 27년(1751년)에 사망했다.

이익은 먼저 죽은 아들의 슬픔을 딛고 ‘망자정랑행록’(亡子正郞行錄)을 썼는데, 그중 이맹휴가 영조에게 올리려고 썼던 '봉사(封事·밀봉한 상소문)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맹휴는 '봉사'에서 영조에게 세상을 고르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백성들 중에 배부른 자와 굶주린 자, 따뜻한 자와 오한에 든 자, 일하는 자와 놀고먹는 자가 있게 한다면 비록 어진 어미라도 자식의 믿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맹휴는 세상을 고르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 방법으로 불평등한 것들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양인(良人)과 천민(賤民)을 하나로 합하고, 먼 지역과 가까운 지역을 하나로 합하고, 중앙과 지방을 하나로 합하고, 문인과 무인을 하나로 합하고, 부자와 빈자를 하나로 합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양자를 통합해서 평등한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익은 이 글을 소개하면서 "때를 기다려 임금께 올리기를 바랐는데, 뜻을 이루기 전에 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아들의 조사(早死)를 안타까워했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신분, 지역, 빈부의 통합을 이야기했던 개혁적인 선비들이 늘 있었다.

지금처럼 쓰이지 못하고 쓰러져 갔지만 그 소리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한데, 대한민국이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대로 갑질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민생은 온데간데없고 정쟁만 판을 친다. 역사교과서 논쟁에서 보듯이 현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저질 공방만 난무한다. 한국 정치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을까.

치유하기 힘든 '3대 난치병' 때문이다. 첫째, 선천성 상생 결핍증이다. 여야, 진보와 보수 모두 진영의 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의 싸움에만 익숙하다.

둘째, 집단 기억상실증이다. 여야 모두 집권 경험이 있는데 여당일 때 다르고 야당일 때 다르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권이 바뀌면 180도 달라진다. 셋째, 도덕 불감증이다. 정치인의 도덕적 해이는 이미 오래 전에 임계점을 넘은 듯하다.

'성추문 논란'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면책특권을 교묘하게 이용해 정확한 근거 없이 폭로를 하고본다.

이런 정치 난치병은 치유될 수 있을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치에는 고속 압축성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제도와 정치문화가 바뀌고 정치인과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경제와 달리, 바뀌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당장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내각제식으로 운영되는 기형적인 권력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내각제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빠진다.

대통령제가 성공하기 위한 제1법칙은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 건강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데, 4년 중임제 개헌을 하면 정치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기형적인 '합의의 덫'에 빠져있는 국회의 운영 구조도 정치 몰락의 큰 원인이다.

소수독재를 정당화시키는 국회선진화법뿐만 이나라 모든 의사일정을 원내 교섭단체 간 합의를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한 것이 오히려 여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어느 한쪽이 합의하지 않으면 모든 의사 일정이 스톱되기 때문이다.

임의단체에 불과한 정당이 국회와 의원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도 잘못됐다. 당의 소수 실력자가 공천권을 무기로 당론을 남발하면서 의원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의원들이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뒤틀리고 왜곡된 정치 서식 환경 속에서 의원들은 생존을 위해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하고 계파에 줄을 서야 한다.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여야가 총선이나 대선을 의식해 혁신 경쟁을 하고 있지만 한국 정치를 살리려면 3대 난치병을 치유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인 2004년 국회 연설에서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가 잘못된 후에 누구를 탓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 모든 것이 대통령과 여당이 선택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바랍니다"라고 했다. 국민은 이맹휴가 꿈꾼 정치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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