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운석]핵보며 6·25 다룬 영화가 ‘국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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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운석]핵보며 6·25 다룬 영화가 ‘국뽕’
  • 광주타임즈
  • 승인 2016.09.2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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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광주타임즈]미국에서 트럼프는 ‘공포’를 팔고 힐러리는 ‘희망’을 판다. 트럼프는 변화를, 힐러리는 안정을 말한다. 트럼프는 “나”와 “미국 우선”을, 힐러리는 “우리와” “다함께”를 내세운다. 트럼프는 벽을 쌓자하고 힐러리는 길을 내자 한다. 트럼프는 백인 민심을 겨냥하고 힐러리는 소수 인종과 이민자에게 귀 기울인다. 트럼프 얘기는 박력있지만 위험하고 힐러리는 말이 밋밋해서 지루하다. 하지만 힐러리와 트럼프가 전당대회를 마치고 11월 승리를 향해 뛴다.

한데 우리나라는 대선이 일년이 더 남았는데도 일명 대선주자들이 요동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당선이 되면 경제가 살아나고, 청년 일자리가 해결되고, 북의 핵도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다른점이라면 진보에 가까운 주자가 사드배치에 반대다. 누구를 위해 설까. 필자가 보기엔 비가와도 우산을 쓰지 말라는 주장과도 같다.

한데 야당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까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회담에서 사드배치를 반대했다. 평소에도 이래서인지, 지난 7월 27일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국뽕’이란 말을 듣고 있다.

국가(國家)와 마약 ‘히로뽕’(필로폰)을 합성한 말이 국뽕이다.

‘국뽕 영화’라면 과도한 국가주의를 전파하는 의도로 만든 영화란 뜻이다. 과거 기사를 찾아보니 ‘국제시장’과 ‘연평해전’이 비슷한 소리를 들었고, 이순신 장군을 다룬 ‘명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귀향’도 “국뽕 마케팅에 의존했다”고들 했다.

이중에서도 북한과 대립하는 내용이나 6·25를 다룬 영화를 향해 대놓고 국뽕이라는 낙인을 찍는 경우가 많다. 이런 종류 영화에 국어사전에도 없는 비하적 표현을 쓰는데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작품의 완성도나 미학적 수준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 담긴 세계관을 문제 삼기 위해서다.

특히 국가를 중독성 강한 불법마약에 비유해 부정적 뉘앙스를 극대화하는 이면에는 “보지 말라”는 매우 적극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로 영화 한 편에 사람들의 의식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일까.

‘국뽕’이란 단어를 들을때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에 따라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하던 시절의 단순 논리가 떠오른다. 결코 전체주의적 세계관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잘 만들었건 못 만들었건 유독 북한과 벌인 전쟁, 남북 대립이 선명한 특정 계열 영화만 ‘국뽕’ 운운하는 것도 또다른 천편일률에 불과하다. 국가가 해준 것도 없이 나라 사랑만 강조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른바 ‘88만원 세대’ 사이에서 한때 출구없는 무한 경쟁에 지친 젊은이들이 행복한 삶을 찾아 한국을 떠난다는 내용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화제가 되는가 하면, 모든 문제를 ‘흙수저 대 금수저’로만 보려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피하거나 늦추는 젊은이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국가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공무원이 되겠다고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 고시촌으로 몰려드는 것을 보면 국가는 이제 안정적 직장 수준으로 떨어진 듯한 느낌도 준다.

요즘같은 판국에 국가에 대해 엄숙주의적 태도를 강조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진경준 검사장을 비롯한 국가 권력을 개인적 치부 수단으로 거리낌없이 활용하는 현대판 나리님들이 건재하다는 게 드러났고, 아무리 사석이라해도 ‘99%의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거침없이 입에 올리는 고위공무원들이 계신 마당에 웬 국가 타령이냐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한쪽에선 ‘국뽕’이라고 나라를 비하하고, 한쪽은 사리사욕을 위해 지위를 이용하는 사이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는 어디로 갔는지 답답하다.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는 오히려 내나라 내조국을 위한 차원에서 봐야 할 일이다. 트럼프가 ‘공포’를 팔고 힐러리가 ‘희망’을 파는 미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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