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과 양심의 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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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과 양심의 야합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6.2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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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최수호 논설위원 = 모든 인간은 공허함을 느끼면 이상화된 세상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에서 빗나간 대상은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들로 여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세상을 더럽히는 추악한 좀 벌레들은 자신이 처리해야 하고 자기가 재거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는 고민도 갈등도 없이 양심적 정의감이라는 잔혹한 흑백논리로 세상을 정화하려는 비합리적인 원시성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오로지 순수 악으로 확신하는 대상을 처단하는 응징만이 있을 뿐 징계대상의 의미 있는 사연이나 감정은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세상을 사려 깊게 다루려는 성숙된 유연성보다는 세상을 단순화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격 장애자처럼 그것을 지켜내려는 완고한 경직성을 보이곤 한다. 이렇게 세상과 인생이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단순하게 규정하고 믿는 것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별 마찰 없이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집을 나간 부인에게 가정을 지켜내지 못한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어 손가락질 해버리거나, 돌아가 가정생활에 충실 하라는 징벌을 내린다면 어찌되겠는가? 이처럼 이상화된 세상을 꿈꾸는 외골수에게는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괴로운 심정이나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감수해내야 하는 고통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정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양심적 정의는 따라야 하겠지만 어떻게 살았는가를 인정받지 못한 이 부인에게는 공허한 헛소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순된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이상화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대상이 어떤 사람이냐는 문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래서 남이하면 불륜이고 자기가하면 낭만이라는 식처럼 제멋대로인 이중 잣대로 편파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늘 자기성찰을 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보호본능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는 처신을 하기 때문에 일관성 같은 건 아예 저버리는 생활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마음은 세상의 불확실성과 혼란을 담고 살 수 있는 여유로움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진정한 성찰과 고민에서 나온 완고한 가치관이 아니라 원인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분노로 점철된 혼란을 겪게 되어 있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마주하는 대상과 세상이 확실해야 하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구체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며, 그 기준으로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히 구분해 줄 수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자기 마음속 혼란은 거의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기 보호본능이 발동하는 파괴적 욕구가 구체화하는 것을 ‘정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악을 제거하려는 동기부여로 포장하곤 한다. 세상이나 상대를 압도하려고 분노하는 것은 정의감 때문에 통쾌함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호를 위해 적개심의 표적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세상을 제대로 응징하려는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마땅히 앙갚음해야할 기준을 설정하면서 복수의 욕구를 실현할 구실만 찾으면 곧바로 현실에 적용시켜 실천에 옮기는 민첩성을 보인다.

그래서 정의란 명분을 앞세운 묻지 마 총기난사 살인사건처럼 어느 누구라도 재수 없이 이런 사람과 맞닥뜨리면 보복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성숙되지 못한 자기보호 의식을 통제하지 못하고 본능적 충동과 양심이라는 초자아의식이 능동적으로 야합을 이루어내도록 방치해버리면 자신의 관점은 정당화되어 정의를 위한 결단으로 굳게 믿게 되므로 일반상식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행동화가 이루어진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심이나 도덕이라는 관념은 우리의 내면의식을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끝없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은밀하고 교활하게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여 정의를 빙자한 화풀이를 하는 무차별적 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서 종교가 ‘신의 뜻’을 빙자해서 인권과 재물을 탈취하고, 불특정다수에게 총기를 난사하고도 ‘사회정의 구현’이라하고, 부모들이 개 패듯이 자식을 학대하고 때리면서 ‘자식교육’이라하는 정의를 앞세운 본능과 양심의 얼토당토 않는 야합을 흔히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사랑받지 못한 본능과 배척당한 양심의 미성숙한 야합은 정의를 빙자한 변덕스러운 폭력을 자아내는 시한폭탄을 장착한 공포의 폭군임을 알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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