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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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인 삶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7.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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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최수호 = 본능(本能)이란 학습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고유한 기량이나 행동습성을 일컫는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각자가 타고난 내면적 욕구를 따르고 만족시키려는 속성을 드러내는 본능적 반응들을 늘 체험하게 된다.

특히 종족유지와 생존보호의 역량을 충동적으로 발휘하려는 것은 모든 개체가 지닌 천부적인 욕망을 충족하려는 본능적 기능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추어져있는 근원적 욕구는 드러낼 여건만 갖추어지면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바로 행동화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걸림이 없는 바람직한 생활을 위해서는 타고난 탐심에 따라 아주 민첩하게 일어나는 욕망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잘 살펴보면 마주하는 대상과의 결합으로 생성된 어떤 욕구를 어떻게든 성취해내려는 내면의식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읽어낼 수가 있다. 어떤 대상과 마주하게 되면 이미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정보와 그 대상과의 조합을 이루어내려는 의지를 반드시 드러내 보이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설정되지 않으면 욕망은 없고, 욕망이 없으면 대상 또한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무슨 욕망을 느낀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발견하여 그 대상을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성되어지는 모든 내면의식은 욕구충족의 대상으로서 각인되어진 상황에서 비롯된 의지적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구를 담아내려는 마음의 흐름이 없으면 세상도 필요 없고, 마음도 필요 없으니 바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그러니 바람과 두려움 모두 욕망의 결과인 것이므로 자기 마음 밭을 어떻게 가꾸어가서 그 욕망을 통제할 것인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태생적 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본능적 작용과 현상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대상에 대한 자극의 조화를 바탕으로 자아의식을 재구성하는 마음의 흐름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모든 현상들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대상과 욕망, 욕망과 대상의 순환작용에서 비롯된 종합적인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만사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조합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과 세상, 세상과 마음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과학은 DNA, 유전자, 유전체와 같은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염색체를 규명해 냄으로써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내면에 무시무시한 정보가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밝혀 이를 증명해내고 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의 마음이란 벌써 각자의 내면에 들어있는 잠재의식인 본능과 어떤 대상에 투사되어 만들어진 욕구의 욕망이 결합하여 자아의식을 재구성하는 기능 작용이 쉼 없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리석은 중생들이 세상의 이치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연기(緣起)와 업(業)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설파했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대상은 경우에 따라 내면의식을 자극하여 본능적 행위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현상계에 대한 인식을 넘나드는 적절한 상호순환을 아우르는 마음작용의 역할을 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렇게 재구성된 마음의 세계가 투사되어 세상을 다시 채색해 간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항상 본능적 충동과 이성적 통제가 충돌하는 갈등현상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본능적 작용의 승리로 귀착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부끄러운 행위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 같은 마음작용의 반복을 통해 실재하는 세상보다 훨씬 다양한 세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마주하는 환경에 따라 자아의식의 변화를 끊임없이 이끌어내 적응하려는 마음작용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대상을 다루는 마음만 살짝 바꾸어먹으면 성공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하려는 비뚤어진 심보 때문에 제 발로 성공과 행복을 걷어차는 존재가 인간들이다. 본능을 쫒는 자해 행위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며 자기 변신을 선택할 대상도 자기 자신뿐임을 자각할 줄 모르는 것이다. 더욱 한심스러운 현상은 사회적 통념이 갈구하는 욕구 충족에 매몰된 잘못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잘살려고 잘살고 있다고 고집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까운 삶을 살면서 고달픈 삶을 후회하고 찌든 인생을 한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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