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이순신 장군 문화유산 관리 허술함 드러나
상태바
여수시 이순신 장군 문화유산 관리 허술함 드러나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7.05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수=광주타임즈] 김종호 기자 = 전남 여수시가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면서 지역의 역사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문화유산을 허술하게 관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택지개발지구내 임진왜란 당시 역사성을 간직한 묘의 이장에 얽힌 논란이 계속되면서 시의 입장이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여수시 등에 따르면 웅천 택지개발지구 내 임란당시 출전했다가 전사한 장군들의 묘 4기가 모셔진 오충사가 있으며, 인근에 정대수 장군의 묘소가 있다.

이 충무공의 휘하 장수였던 정 장군은 자신의 집터인 오충사 옆에 충무공의 어머니를 기거할 수 있도록 모셨으며 이곳은 후세에 자당기거지터가 됐다.

정 장군은 부상을 입어 1년 동안 이 터에서 치료 했으나 숨을 거둬 안장됐다.

정 장군과 휘하 장수, 오충사, 자당기거지 등은 전란 중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던 충무공과 휘하 장수들의 노력과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전란과 전과에 묻혀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여수시는 자당기거지가 택지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뒤늦게 인근 1만5624㎡의 땅을 함께 매입해 시 기념물로 지정했다.

자당공원으로 조성해 충무공의 충효와 전란을 이끌었던 전라좌수영민들의 노고를 기리겠다는 취지다. 오충사도 현행대로 보존관리 된다.

하지만 인근 야산에 홀로 있던 정대수 장군의 묘는 개발 구역 내라는 이유로 이장이 불가피한 실정이 됐다.

정씨 후손들은 정 장군의 충절과 역사성을 들어 자당기거지 내 이장을 여수시에 수차례 요청했다.

여수시는 공원조성예정지인 오충사나 여수시 학동 정씨문중 묘지내로 이장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후손들은 소문중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두 곳에 이장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하소연했다.

이 같은 줄다리가 계속 이어지는 과정서 후손들은 지난 4월 정 장군의 묘소를 자당기거지로 이장했으며, 이곳이 추후 시유지가 되자 시 땅에 개인 묘가 존재하게 된 셈이 됐다.

후손들은 “원래 정 장군의 집이었던 곳에 충무공의 모친을 모셔 자당 기거지터가 된 만큼 단순한 개인 묘로 볼 수 없는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며 시의 협조를 요구했다.

여수시 관계자는 "개발공사의 시급성을 감안 묘지이장을 지속적으로 문중에 요구하는 과정서 지난 4월 정씨문중에서 임의로 택지개발지구 내 자당공원 부지에 장군묘를 이장했다"며 "정식 묘로 허가 되지 않아 묘지 이설비 1400만원은 지급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문화재유산위원회 자문을 거쳐 양성화시키거나 다른 곳 이장 요구 등 다각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씨문중관계자는 "여수시와 합의 없이 묘를 이장하긴 했지만 후세에 알릴 여수의 자랑스러움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연관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헤아려 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시가 법을 따져 옮기라고 명령하면 후손 회의를 거쳐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53)씨는 "이순신 장군이 전란 중에서도 어머니를 여수에 모셨고 휘하 장수들이 집을 내주고 돌본 역사적 사실로 볼 때 단순히 택지 개발 지구내 개인묘 이장에 얽힌 논란거리로 볼 수만은 없다"며 "시가 사전에 역사성을 고려한 좋은 방안을 연구해 참뜻은 살리고 논란의 소지는 미리 차단했었어야 하는데도 안일하고 허술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은 1593~1597년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의 자당인 변씨와 가족들이 고음천의 정대수장군 자택에 기거했던 역사적 장소다. 시 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달 여수시 웅천동 '이충무공 자당기거지'를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시 문화유산(여수시기념물)1호로 지정·의결했다. 주변 1만5624㎡ 부지에 광장, 산책로, 휴게쉼터, 공중화장실 등을 갖춘 자당공원이 조성돼 충과 효를 알리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