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원은 "과거 부자집 딸, 당시만 하더라도 의사가 거의 없었는데 의사를 아버지로 둔 독실한 기독교 모태 신앙인으로 태어나 이화여고, 이화여대, 서울대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하는 등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여성운동에 매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YWCA(기독교 여자청년회의) 총무를 역임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고, 주위에서 모두 반대했지만 결혼했다고 한다"며 "항상 김대중 대통령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꼭 동석하지만 몇 시간씩 대화를 하더라도 이희호 여사는 절대 그 대화에 섞이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는, 그런 절제된 분이었다고 기억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결혼은 서른 여섯에 했는데,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결혼 후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역정이 파란만장하니까 함께 민주화투쟁을 했고, 특히 구속이 되니까 가족들과 함께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을 구성해 끝까지 저항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신군부 감옥에 있을 때 대통령만 하지 않는다고 하면 뭐든 다 시켜주고 살려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유혹에 넘어갈 순간이었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그 때 이희호 여사가 생각나서 어떤 경우에도 배신할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이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옳은 길, 민주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채찍질을 했고 일탈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지켜준 분이어서 험난한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많이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희호 여사가 남긴 유지(遺旨)를 이날 오전 11시 발표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희호 여사 사회장 장례위원회 김성재 집행위원장이 오전 11시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6층 교수회의실에서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