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의 권한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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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의 권한 회수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1.0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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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신안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재흥=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 교단에 학교장의 고유 권한마저 회수하려는 조례가 통과되었다. 최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서울특별시교육감 행정권한의 위임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학교 현장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통과된 조례안은 학교장이 판단해야 하는 행정적 권한 일부를 필요한 경우 교육감이나 해당 지역 교육장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조항이다.

예를 들면, 학교주차장, 운동장, 체육관 등 그동안 학교장의 판단으로 일반인에게 사용 여부를 허가했던 각종 사항을 서울시 교육감이나 교육장이 직접 개방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교육과정 운영과 행정재산 관리 등의 내용이 학교장에게 위임되어 있는 현재의 권한을 회수하여 서울시의 교육감(장)이 직접 챙기겠다는 발상인데, 이는 행정권한 위임 조례 제6조를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그동안 각종 교원단체와 학교 현장의 강력한 반발을 무시하고 개정 조례를 밀어붙인 서울시의회의 속뜻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들이 보기엔 학교 현장이 만만하게 보였다는 뜻인가? 아니면 교단을 갉아 들어와 학교를 점령하겠다는 뜻이 아닌지 묻고 싶다.

요즘의 학교 현장은 주중과 주말의 구별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토요스포츠, 토요 예능동아리 활동 등으로 주말에도 학교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방학 중에도 각종 방과후교육 활동의 연속선에서 학생들의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 학교는 연중 가동되고 있는데 상급기관에서 학교 시설 개방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시설 개방을 위해 교육감(장)이 사전에 학교장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학생들의 교육 활동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방을 결정하리라 믿고 싶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장이 주민들의 표를 의식한 나머지 긴급한 행사를 핑계로 특정 학교의 시설을 요구한다면 교육감으로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세우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교육 활동 시간 변경이나 생략 등의 방법을 제시하며 막무가내로 시설 개방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일부 지자체장들이 모든 사업과 시설 설비 투자 등을 차기 연임을 위한 득표와 연결시키는 모습을 많이 봐 온 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밖에서 보는 학교장의 권한은 매우 커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부모나 주민들과 얘기를 해보면 대부분 학교장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에는 학교 예산의 대부분을 학교장이 주물렀지만 지금은 전자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학급 담임 배치 등 인사권은 교내 자문회의에서 결정되며, 교직원의 근무평가 등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도구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장은 과도한 업무지시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갑질’이라는 용어 사용자의 주체가 대부분 학교장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 학교장의 권한이라는 게 사실상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약화되었다. 이런 처지에서 학교 시설의 개방 여부마저 윗선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그나마 남아있는 학교장의 대외적인 방어막마저 모조리 없애겠다는 의미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민주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정의 위치에 집중된 권력이 골고루 분산되고 분배되어야 할 것이다. 갖가지 권력의 주인공은 위가 아닌 아래에 머물러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의 조례개정은 권력을 거꾸로 가져갔으니 시대착오적인 오류를 범한 셈이다.

공익의 목적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단위 학교의 권한을 앗아가는 일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민주라는 명찰을 아름답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하향 분산이 우선되어야 한다.

권력은 밑으로 내려올수록 더 민주적이며 균형 잡힌 시민사회가 형성된다. 결국 권력은 국민에게서 탄생되며 주권과 권력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이상향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학교 개방 문제는 구성원의 자율적 판단에 의한 학교장의 고유 권한이다.

쇠약해진 교단과 학교장의 권한에 더 이상 난도질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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