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비리와 여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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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 비리와 여주 이씨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8.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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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고운석 =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 정치철학자 액튼경의 경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에는 돈이 따른다. 누구나 집권하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챙기기 때문이다.

멀리 따질 것 없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돈을 너무 많이 먹고 배탈이 나 지금도 허우적 거리고 있다.

또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들과 형이 권력형 비리로 교도소를 갔다. 뿐만아니라 측근 가신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게이트 사건'들 또한 정권마다 예외가 아니다. 역으로 돈은 권력을 추구한다. 재벌은 부를 지키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권력과 결탁한다.

정경유착의 먹이사슬은 여기서 빚어진다. 군사독재 개발독재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민주화 이후 정권에서도 재벌들은 대선 때마다 검은 정치자금을 차떼기로 권력에 바치고 특혜를 누렸다. 이처럼 권력과 돈은 공생공존한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같다.

돈과 권력은 손에 쥐면 명예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천한 사람도 돈만 있으면 남들이 귀하게 대접해주는 세상이다. 돈과 권력을 명예보다 중하게 여기는 사회풍조가 만연돼 있다. 성직자나 학자 교수도 명예보다 돈과 권력을 더 추종한다. 권력, 돈, 명예 이 세가지를 모두 가지면 3관왕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탐욕이다. 모든 비리와 비극은 바로 이 탐욕에서 빚어진다.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매입파동으로 코너에 몰려 입각을 못한 총리와 장관 후보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돈(千金)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마라.'의 여주 이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을 보면 가슴을 울린다. 이 집안은 돈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면서도, 선조대부터 광해군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3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수재 집안이었다.

그렇다면 이 집안에서는 무엇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돈 대신에 학문을 전해주라는게 이 집안 선조의 당부였다. 조선 후기에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왔던 여주 이씨 이하진(1628~1682). 그는 청나라 황제로부터 은 한궤짝을 선물로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 은 한궤짝을 들고서 연경의 서점가였던 '유리창'으로 갔다. 은을 몽땅 책으로 바꿨다. 구입한 책이 한수레 분량이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수천권이 되었을 것이다. 그 책 가운데는 명필로 유명한 왕희지의 서첩(書帖)도 많았다. 이하진 본인도 글씨는 명필이었기 때문이다.

유리창에서 구입한 이 책들은 '이가장'이라고 불리며 여주 이씨 집안의 가보가 되었다. 이때 나온 이야기가 바로 '천금물전'이다. 아버지가 연경에서 사온 책을 가지고 공부한 인물이 이하진의 아들들인 옥동(玉洞) 이서와 성호(星湖) 이익이다. 옥동은 서예로 대성하여 옥동체를 만들었다.

기호 남인의 아지트였던 해남 녹우당에 걸려있는 '예업(藝業)'이라는 글씨도 옥동의 글씨이다. 그런가하면 이익이 방대한 분량의 '성호사설'을 집필할 수 있는 밑천도 다 선대에 연경에서 구입해온 장서에서 나온 것이다. 장서의 효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도 여주 이씨이다. '택리지'의 서문을 성호 이익이 써주었다. 이익의 재종손·6촌 손자가 이중환이다. 이중환은 일찍 집안 어른이었던 안산의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자연스럽게 '이가장'을 섭렵하였을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저술은 '이 정도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 자신감은 일급 자료들을 접했을 때 생겨난다. '성호사설'이나 '택리지'의 출현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한데 돈을 후손에 물려주지 마라는 여주 이씨 집안의 가훈과 학문의 교훈은 내 팽개치고, 돈과 권력을 쫓다 망한 공직자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권력형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깨끗하게 돈을 벌어 당당하게 사는 '청부'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 사회도 돈, 권력, 명예 중 한가지만 추구하고 청부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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