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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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82회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7.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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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통일코리아 지도자회 이사장 문경주=세계일보기자가 2006년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만주지역을 취재해 특집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그 지역에서 가짜영웅 박정희를 본 사람과 인터뷰 기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박정희가 간도특설부대와 연합작전을 벌이는 것을 직접 봤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약 1주일간 중국 동북지방 여러 곳을 방문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조선족들을 만나 그 지역에서 복무 중인 2개월 차 생도였던 가짜영웅 박정희를 직접 봤다는 증언을 들었다는 겁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짜영웅 박정희가 간도특설부대에 지원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4년 초에 일본에서 출간된 『간도특설부대』란 책에 보면 친일 인명사전에도 수록되지 않았던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부대 출신이란 겁니다. 국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그 악명 높은 간도특설부대 출신임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본 자료에는 그가 간대특설 대원으로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김 영가는 주제를 바꾸며 발언을 이어갔다.
가짜영웅은 왜 5‧16 쿠데타를 감행했을까? 가짜영웅 박정희는 일본의 조선침략시대엔 교사로는 만족이 안 되어 혈서를 쓰면서까지 일본에게 충성을 다해 출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일본에 충성만 하면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라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했을 때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가 의문입니다. 어쩌면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구미에 있는 자신의 누이 집에 칩거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혼란한 정국이 점차 수습되고 친일 군인이었던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미국에 빌붙어 국군으로서의 국방경비대를 창설하면서 이른바 군사영어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한민국 군부에 진출한 뒤에 승진을 거듭해 잘나갔지만 모든 게 뜻대로 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일분자들을 포용하며 독재정치를 감행했던 자유당 정권의 몰락은 가짜영웅 박정희에게 닥친 또 한 번의 위기였을 겁니다.

4·19로 무너진 자유당 독재가 타도되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자유민주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역 없는 언론에 의해 친일 전력자들의 추잡한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 분명했습니다. 기회주의자로 약삭빠르게 처신해 온 사람들은 불안했을 겁니다. 가짜영웅 박정희가 그런 상황을 계산하지 못할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가능성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쿠데타를 감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어쩌면 그가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장면 정권이 주한미군 사령부로 피신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장면은 깔 멜 수녀원에 숨어 쿠데타군을 타도할 대항군을 지휘할 통수권자의 권한과 기회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로인해 박정희에 쿠데타는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이전에 미국 첩보기관으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가짜영웅 박정희에 쿠데타 음모를 경고 받고도 장면 정권은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장면 정권은 한 마디로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할 위인이 못 되었던 같습니다.                       

어쩌면 당시에 우리 국민이 그런 사람을 뽑았다는 자체가 민도(民度)를 나타내는 것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가짜영웅 박정희는 쿠데타를 성공하고도 잘못될 경우 북한으로 도망갈 것을 궁리했는지가 의심되는 대목도 있습니다. 쿠데타 직후 아주 극비에 소위 남북한 간에 군사적 영관급 회담이라는 것을 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석연치 않은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기회포착 능력이 탁월하게 살아온 그의 치밀함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쿠데타가 실패하면 북한으로 도망갈 계획까지 세운 게 사실이라면 정말로 사활을 건 도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쿠데타군들은 단순한 정보수집 공작이었다고 하나? 그 깊이 있는 남북한 접촉은 의심받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장면정권 치하에서는 언론이 자유화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며 그럴 경우 인간 박정희에게는 그만큼 치명적인 죄를 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가찌영웅 박정희가 집권 내내 강력한 독재정치를 행하며 언론을 장악했으리라고 믿는 이유입니다. 어쨌든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좋은 대통령이라고 장장 18년간 국민을 세뇌시켰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죽었지만 언론이 자유화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를 비판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를 영웅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며 원로세대들이 나서서 박정희를 경제개발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설명하면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부패에 연루된 언론의 힘이 그만큼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 가짜영웅 박정희가 쿠데타를 강행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자유 언론들은 그의 과거 죄상들을 물고 뜯었을 것이며 단죄하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가짜영웅 박정희는 쿠데타를 감행해야만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그 판단은 정확했다는 반증입니다. 결론은 당시 민주당 정권의 탄생은 친일파들에게 있어서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의 위기였다는 말이 됩니다. 그들에게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보다도 더한 위기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해방 당시엔 일본을 대신해 미국이 정국수습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회주의자들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해 일본 대신 미국에게 빌붙어 아부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민주당 정권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언론을 자유화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군부에 숨어 있는 친일파 군인들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군이 되었던 기회주의 친일 분자들은 사활을 걸고 쿠데타를 감행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83회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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