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드 사운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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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 가는 길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7.0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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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신안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재흥=퀸즈타운에서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원시림의 숲을 뚫고 절벽의 틈을 헤집어 낭만의 호수를 곁들인 천상의 낙원이었다.

길은 편도 1차로인데 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 2대가 거의 맞붙어서 간신히 피해 갈 정도로 좁은 도로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으로부터 독립되어 만들어진 길이란다. 당시엔 마차를 타고 편리하게 다녔을 길이었을 게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도로를 확장하려는 계획이 없다고 한다.  

밀포드 사운드와 퀸스타운을 연결하는 중간에 화강암의 암벽산이 길을 가로 막는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촬영했다는 지점 부근에서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길을 멈추었다.

1차로인 이 호머 터널은 터널 입구에 세워진 신호에 의하여 차량의 진행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 18년에 걸쳐 완성된 이 터널은 암벽을 뚫어 시멘트 콘크리트를 쓰지 않고 암벽의 요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관광객의 편의나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통제하는 그런 배려가 아니라 오로지 자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정부의 변하지 않는 원칙이란다.

거리는 깨끗하였다. 담배꽁초나 휴지조각 하나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깔끔한 거리를 보는 일은 눈 쌓인 설산을 보는 일만큼이나 즐거웠다. 도시의 어디를 보아도 지저분한 곳은 없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눈 쌓인 산들의 행려는 그야말로 비경 중의 비경이었다. 이제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계절이라서 흰 설산은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희다 못해 시린 빛을 띠는 설산은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래로는 목초지의 초록과 잘 어울리는 신비스런 조합을 발산하고 있었다.

뉴질랜드, 아름다운 자연으로 천혜의 혜택을 받은 이 나라는 우리보다 조금 더 넓은 국토 면적에 인구 450만 명을 가진 적은 나라이다. 북섬과 남섬 등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과 소가 중심이 된 1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공장이나 물건을 만드는 생산 시설이 거의 없으므로 생필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소와 양을 기반으로 온 나라가 축산업에 치중하고 있으니 소득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의 질만큼은 전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음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필자가 뉴질랜드에 머무는 동안,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가진 산림 자원도 부러웠지만, 정치 지도자나 국민들이 경제개발에 대한 욕구를 자제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족한 생필품이나 자원을 더 이상 외연으로 확대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핸드폰은 터지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 조건을 이용한 관광이 활성화된 나라라면 당연히 관광객의 편리를 고려하여 도로변을 따라 핸드폰의 송수신이 잘 되도록 우리처럼 기지국을 군데군데 설치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편의주의적인 사고방식이지 뉴질랜드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불편한 논리였다.

자연은 잠시 현재의 인간들이 빌려 쓰고 있을 뿐이라는 절제된 사고, 그들의 후손들이 자손만대에 걸쳐 편안히 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로써 일점일획이라도 자연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된다는 그 철저한 인식의 틀 앞에서 그저 목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연을 보호하려는 국민들의 정신이 주요 관광지로 이어지는 도로마저도 확장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길가의 원시림이 풍광을 가로 막고, 길을 덮쳐 짓눌러도 나무를 벨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단순한 자연보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 기간 다져진 국민들의 철학이며 정치 지도자들이 국정을 다스리는 기본 사상으로 각인된 것들이었다.

지난 시절 우리는 한동안 자연보호를 외쳐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구호마저 사라져 버렸다. 학생들을 통하여 자연보호라도 외치던 그 시절엔 제법 자연 사랑이 행동 규칙으로 강화되는 듯 하였던 것이다.

이제 고개를 들어 우리의 산하를 보라, 전국의 국도변을 따라 파헤쳐지지 않은 곳이 없고 핸드폰이 터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곳곳이 짓이겨지고 있다.

최근 들어 도로변을 따라 들어선 태양광 패널은 번들거리는 반사광으로 환경 파괴의 극치에 다다르고 있다. 학교의 옥상까지 점령한 태양광 패널은 학생들의 건강을 잠식하고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문제점을 파헤치는 이가 없다.

오히려 전력 생산으로 학교 예산 절감 운운하며 장려 일변도로 치닫고 있으니 참 어이가 없는 실정이다. 전기가 흐르는 곳에는 일정한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기본 사실을 외면하고 지금 전국 도로변은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지고 있는 것이다. 전봇대가 가까워야 태양광 전기를 전선에 연결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란다. 

뉴질랜드의 어디를 보아도 태양광 패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전기는 수력발전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지자체의 무분별한 허가에 따라 도로변 100미터까지 태양광 발전 시설을 허용하고 있으며,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기에 부적합한 경사진 산기슭을 파헤쳐 적은 양의 강우에도 붉은 토사가 흘러 내려 도로를 덮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태양광 업자들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편승하여 주택의 옥상, 농지나 밭, 산림까지 훼손하며 태양광을 설치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앞으로 십년쯤 지나면 폐기물로 교체되어 쏟아질 패널 쓰레기를 어찌 처리할 것인가.

더욱 가관인 것은 저수지 한 가운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전기를 생산하도록 허용을 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단다. 저수지 오염에 따른 수질 오염, 그리고 지하수 오염은 또 어쩌란 말인가?

또한 신설 학교 옥상에 태양광 설치를 하고있는 학교가 늘고 있는데 학생들의 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한번쯤 고려해 봤는지 묻고 싶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태양광 발전 사업은 분명히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고품격 정책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정책이라면 문제가 있는 정책 아닌가. 무인도나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해변가 등으로 눈길을 돌리면 안되겠는가.

그런가하면 인적이 드문 산속의 자연 하천까지도 건드리는 지자체가 있다. 하천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바위와 수풀 등은 홍수 때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중요한 자연물인데 모두 파내어 반듯한 직선의 물길을 만들어 버렸다.

이런 곳은 적은 양의 빗물에도 쉽게 홍수 피해를 상상할 수 있겠다. 개발과 환경 보존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정책을 펴는게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이겠다. 그간 우리는 변화와 속도의 틀에 갇혀 깊게 생각하지 못한 졸속 정책들이 많았다.

이제는 환경 파괴와 오염에 따른 자연 보호도 함께 맞물려 굴러야 할 수레바퀴의 두 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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