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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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부지깽이
  • 광주타임즈
  • 승인 2020.07.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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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신안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재흥=싱그러운 초록빛을 띄며 햇살을 뿌려주는 대로 잘 받아 마시던 소나무 몇 그루가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초록의 색이 옅어지며 가지 안쪽에서부터 마른 잎들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한낮의 햇살이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땀으로 배어드는 여름 열기는 처마 끝에 머물며 강렬한 눈빛을 치켜뜨고 있는데, 반그늘을 더 좋아하는 소나무를 쨍쨍한 햇볕에 그대로 노출하여 무리한 일광욕을 시킨 게 화근이었다.

그간 계곡에서 공수된 후 향수병 한번 앓지 않으며 사철 푸르고 의연한 빛을 쏘아대던 모습을 보는 즐거움으로 인하여 은연중에 애지중지 가꾸던 분재였다.

제 빛깔을 잃어가거나 시들기라도 하는 날이면 가차 없이 원래의 제 땅으로 이식하려 마음먹고 있었지만 막상 시들어지자 돌려보내기 아까웠다.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해 손에 쥐어야 안심이 되는 욕망의 한 자락이 살려야 한다는 구원의 빛으로 꿈틀거렸다.

다시 살펴보았더니 이파리가 실록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간 풍부한 수액과 햇빛으로 인해 잘 자란 속가지가 너무 울창하였다. 속가지가 울창하면 나무는 이파리에 신호를 보내 안에 있는 이파리부터 말리기 시작한다. 일종의 스스로 속옷을 벗는 통풍 행위인 것이다.

이 때 속가지를 전정해주지 않으면 이파리는 전체적으로 시들어가며 통풍이 오랫동안 되지 않을 경우 고사할 수도 있다는 분재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몇 년 전 전임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문을 막 들어서면 운동장에 반원형 모습의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모습도 반달을 닳아 의연할 뿐 아니라 우뚝 선 그 자체의 형상이 ‘숲속의 궁전’이라는 표현에 딱 맞게 송광을 상징하고 있었다.

워낙 빼어난 수형의 소나무가 학생들을 맞이하며 아침마다 상큼한 인사를 하고 있었기에 나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소나무가 가을이 되기도 전에 초록빛을 잃어가며 이파리가 말라가는 증상을 보였다.

학교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분재에 관한 한 조금 안다는 필자도 깜짝 놀라 전문가를 모셔다 처방을 하기에 이르렀다. 원인은 간단했다.

속가지가 너무 울창하여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간 가뭄이 상당 기간 진행되었기에 물길을 만들어 물을 듬뿍 뿌리곤 했었는데 원인은 물 부족이 아니었다. 그날 속가지 전정으로 소나무는 복잡한 속옷을 전부 벗었다. 말끔하고 시원한 모습으로 바람을 맞이한 것이다.   

며칠 후, 소나무는 완벽하게 원래의 푸르름을 재현해 내었다. 물과 햇볕만이 나무를 살리고 가꾸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이 원래의 보금자리에서 운동장이라는 곳으로 옮겨왔으므로 스스로 살아갈 면역력이 약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때맞춰 가지도 쳐줘야 하고 양분은 물론, 바람도 통하게 해줘야 했다. 계곡에 있을 때는 스스로 옷을 벗고 사시사철을 견디어 냈지만 사는 곳을 옮겨 왔기에 인위적인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식물을 가꾸는 일은 학생을 지도하고 사람을 만들어 가는 교육활동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학생들을 자연 상태로 양육하는 일은 지난 과거에 페스탈로찌의 역설로써 가능했다.

속가지가 아니라 곁가지를 쳐서라도 바람을 통하게 하고 수형을 잡는 일이 바로 교육이다. 아궁이에 짚이나 나무, 솔잎 등으로 불을 땔 때 불꽃이 좀 더 잘 일어나도록 쏘시갯감을 헤집는 데 쓰는 막대기를 부지깽이라고 한다. 장작불이나 모닥불도 부지깽이로 밑불을 잘 들쑤셔 주어야 불이 잘 탄다.

밑불을 들쑤신다는 얘기는 불타는 장작더미의 아래쪽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공기통로를 열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은 바로 교사가 부지깽이 역할을 하는 일이다. 불쏘시개 역할을 통해 학생의 잠재된 역량을 일깨우고, 정신에 내재된 특기와 소질을 계발시키는 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이러저런 정신적 자극을 주어 자신의 능력을 깨우쳐 가는 것, 바로 교육 본연의 목적이며 방향인 것이다.

다가오는 4차원 시대, 즉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여 좀 더 다양하고 창의융합적인 미래 사회인 육성을 위해 학교는 물론, 지역과 사회가 삼위일체가 되는 교육공동체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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