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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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체성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02.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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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최수호 = 마음은 생각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인식작용을 하기도 하고, 의도나 의지를 표출하기도 하고, 의식하고 파악하는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마음이 작용하는 내용에 따라 생각, 느낌, 감정, 의식, 의지, 인식처럼 표현은 다르다.

하지만 마음이 작용하는 속성은 모두 다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작용인 생각이란 현재 마주하는 어떤 것과는 다른 것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책을 읽으면서 인지되는 내용에 집중하여 인식되는 의미는 생각이라 할 수 없다.

그 책에 새겨진 글자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어떤 이미지가 연상된다거나, 또 다른 의미가 연이어 떠오른다면 생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제 존재하는 것에 집중하여 아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하는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떠올리면 그게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의향에 따라 이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저렇게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안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즉 자신의 생각은 자신이 의도한대로 취급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추스를 수 있다면 내 인생 역시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생각’이라 규정하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좀 더 깊이 성찰해 보자. 이를테면 자기 앞에 어떤 물체가 놓여있음을 자각했다고 하자. 그 순간 곧바로 “이것은 무엇이다” 혹은 “이게 뭐지?”하는 사유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이것은 책상이다’고했다면 ‘책상이다’라고 하고 싶어서 ‘이것은 책상이다’라고 했을까? 이런 현상의 과정을 잘 고찰해 보면 맨 먼저 자신의 의지와는 별로 관계없이 감지하는 의식작용에 따라 대상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이라 떠오르는 조건적 인식작용을 한다.

이런 경로를 통해 그게 ‘무엇이지’라거나 ‘무엇이다’하는 판단분별을 하고 만다.

이처럼 우리는 연상되는 인지과정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따라가기만 한다.

그러므로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상이 ‘생각’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이런 의식작용의 절차를 밟아 형성된 견해를 자기 의지로 생성해낸 ‘자기생각’이라 여긴다.

그러니 ‘생각’을 ‘내’가 한다고 굳게 믿는 것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생각을 했다.’고 하려면 마음속으로 어떤 의향을 드러내야지 하고 구상해 간직해두었던 착상을 그 다음에 그대로 드러내는 그게 내가 한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평소에 자신이 의도하고 있던 것을 필요에 의해 꺼내 썼다면 ‘내 생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는데도 예측 없이 헤아려지는 어떤 이미지는 ‘내 생각’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상’을 보고 ‘책상’이라 하는 것처럼 실재하는 조건(대상)에 따라 떠오르는 이미지(책상)를 ‘생각’이라 하고 그것을 자신이 했다고 여겨 ‘내 생각’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생각에 앞선 생각 없이 갑자기 어떤 이미지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내 생각인 것이다.

이를테면 책상위에 이것저것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대상의 조건에 따라) ‘지저분하구나!’ ‘너저분하거나!’ ‘어수선하구나!’하는 것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지저분하다, 너저분하다, 어수선하다)가 내가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말하는 생각은 조건에 따라 떠오를 뿐이지 내가 창조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서 어떤 것이 떠오르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한 것들을 잘 살펴보면 각자의 기억으로 입력된 지식정보 중 어떤 것이 그대로 떠오르거나 이미 저장된 지식정보들이 서로 결합하여 변형을 이루어 떠오른다.

따라서 어떤 대상과 접하면서 자기에게 입력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전혀 생각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한번 입력된 정보는 지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만 되면 언제든지 떠오를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영어를, 한국인들은 한국말을 잘하고, 바람둥이가 수행을 통해 여자를 멀리했다 해도 야한 여자가 거들먹거리면 다시 여자에게 흔들리고, 주정뱅이가 술을 끊었다 해도 술친구들과 어울리면 곧 바로 술을 마시고 만다.

이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다스릴 수 있어야 자신이 의도한 인생을 엮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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