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극복, 연대는 선택 아닌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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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극복, 연대는 선택 아닌 필수입니다”
  • 유우현 기자
  • 승인 2022.11.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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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적 참사로 다수 국민 트라우마 호소에
‘오월증후군’ 겪었던 광주시민들 ‘연대의 목소리’
“고립감에서 벗어난 연대, 트라우마 극복에 필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trauma)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사고 피해자는 물론,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접한 일반인들도 고통을 호소 중이다. 국민 모두를 ‘고위험군’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를 지켜보는 광주시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518민주화운동의 후유증인 ‘오월증후군’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은 광주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됐기 때문이다. 오월증후군을 겪은 피해자들은 “우리도 여전히 5월이 되면 518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라면서도 “트라우마 극복의 핵심은 고립감에서 벗어난 연대인만큼, 고통스러울수록 함께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 고통스럽고 정의하기 힘든 ‘트라우마’
트라우마는 매우 고통스럽거나 불안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무력감을 유발하며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건강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다만, 개인에 따라 그 증상이 워낙 다양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면도 있다. 같은 사건, 같은 경험을 했어도 사람에 따라 발현 정도가 상이해서다. 

광주 시민들에게 트라우마는 익숙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오월증후군’, 매년 5월만 되면 5·18에 대한 생각이나 그림이 떠오르면서 불안이나 답답함,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일컫는다. 지난 2017년 오월심리치유이동센터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했던 광주시민의 10명 중 7명 꼴로 5월이 되면 오월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월증후군은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의 단순한 우울감 내지 마음의 병 정도로 치부됐다. 당시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담론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던 탓이다. 광주 시민들의 마음 속 생채기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집단적인 트라우마 증상으로 인지됐다. 

▶ 마음의 상처, 연대의 힘으로 극복해야
오월증후군을 겪었던 광주 시민들은 ‘트라우마는 절대로 혼자서 이겨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상무대에서 고문을 당했던 ㄱ씨는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나를 짓밟던 군홧발이 악몽으로 되풀이된다”라며 “약물치료도 최근까지 병행하고 있지만, 매년 5월이면 가위에 눌리던 나를 치유해줬던 것은 ‘괜찮냐’며 위로해주고 공감해 준 가족들과 친구들, 트라우마센터에서 함께 한 공동체였다”라고 강조했다. 

트라우마는 ‘전이’된다. 트라우마가 초래하는 고통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전이되는 현상이다. 518민주화운동으로 아버지를 잃었다던 ㄴ씨는 “남편을 잃은 어머니의 충격이 우리 남매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우리는 매년 5월이면 힘든 한 달을 보내곤 했었다”라며 “그런 우리를 치유해 준 것은 공동체와 연대를 통한 긍정적인 감정의 ‘전이’였다.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 또한 전이된다. 마치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가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공동체 안에선 우리도 긍정적인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시민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광주시트라우마센터 김명권 센터장은 “트라우마 치유의 가장 좋은 방법은 배려와 존중을 통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지인이나 친구와 만나는 빈도도 서서히 줄어든다. 사회 관계망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럴 때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개인에게 ‘그건 네 탓이 아니다’라며 지지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 센터장은 “마음이 아플 땐 혼자서 극복하려 하지 말고, 각 지역마다 센터 등의 관련 기관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다. 그분들이 겪은 사건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단, 감정에 공감해주고 연대하는 것이 핵심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광주시는 2012년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을 치유하고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회복될 수 있도록 생존자 심리치유, 공동체 치유, 국가폭력 예방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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