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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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수용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6.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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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최수호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명문화 된 법, 사회적 규범, 특정 집단의 규칙,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가짐, 합리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 꼭 지켜야 하는 것,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 있으나 마나한 것, 대중을 위한 것, 특정한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것,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생뚱맞은 것 등등 수없이 많은 다양한 규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원하지 않은 것을 했을 때 아버지나 어머니의 거친 목소리와 화난 표정, 부모가 바라는 것을 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환한 얼굴과 다정한 음색을 통해 어버이가 무엇을 원하는 가를 익히고 금지와 허용을 배워간다.

이처럼 우리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는 다양한 규정의 틀에 노출되는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세상을 인간답게 무사히 살아갈 수 있으려면 세상의 규약들을 배우고 익혀 내재화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확고하게 내재화된 다양한 규약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교통신호처럼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과 아침산책처럼 꼭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율처럼 대체로 준칙의 실행경계의 강제성이 명확한 규정은 거의 갈등의 소지 없이 소화해낸다.

그러나 ‘자원 봉사’ ‘불우 이웃 돕기’처럼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방칙(方則)과 같은 규약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때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마음의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고, 자책하는 내면의 고통을 겪게 되면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놓도록 자기 통제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세상에 대한 원칙을 어떻게 세우는 가에 따라 결정된 질서 안에 머무는 삶을 살거나, 어떤 규범을 취하여 스스로의 협약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가에 따라 자신만의 준칙으로 결정하는 삶을 살거나, 아무런 기강도 만들지 않음으로써 어겨서는 안 되는 세상의 규제를 깨는 불편한 삶을 살 것인가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규칙에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준칙에 얽매이지 않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심사숙고한 올바른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원칙을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자립형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모두 가르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기 스스로 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마음속의 규칙을 체계적으로 내재화해서 세상에 적응해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 갈 수밖에는 없다. 그렇지만 꼭 지켜야할 규정을 어기면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 재앙을 맞아들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자기 확신과 세상의 규칙이 통째로 흔들리는 혼란 속에 던져진 자신에게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평범한 삶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심을 함으로써 세상의 법을 어겨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불가피한 선택에 따른 죄 값을 감수하고 나면 다시 평범한 한 인간으로 돌아와 세상과 자신에 대해 확고하게 내재된 규범을 준수하는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를테면 ‘불효’ ‘배신’에 대한 비난이 어느 한사람의 생각일 뿐이라면 우리는 ‘불효’나 ‘배신’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효’와 ‘배신’에 대한 비난의 진실을 자신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불효’나 ‘배신’의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불효를 하는 것, 배신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라고 질문하면 “물론이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했던 사람들은 ‘불효’나 ‘배신’을 지켜내려는 의향이 없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충만한 효도나 충직한 충성을 완수해내지 못한 사람들은 많겠지만 세상에 ‘불효’와 ‘배신’을 배척해 버리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면 폭력을 일삼는 주정뱅이 아버지를 살해한 불효나, 치매 수발에 시달리다 지쳐 아내를 살해한 남편의 배신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짓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상기한 ‘불효’나 ‘배신’처럼 부정적 행위자체보다는 주어진 여건에 따른 상황인식에 의해 내면화된 확고한 신념을 기준으로 문제의 행위를 판단하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평범한 삶속에서는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임을 명료하게 알고 있지만 여건에 따라 어떤 규범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나눠지기도 한다.

그러니 배척하고 싶은 증오의 대상일지라도 배려와 사랑을 베푸는 여유로운 삶을 통해 죄는 미워하되 사람까지 미워해서 버리지는 말라. 자비심이 확고하게 내재화된 규범을 지켜내는 준칙의 실현으로 우리 모두 멋진 인생의 역전 드라마를 펼치도록 세상을 엮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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