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태동에 관한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에게 항복 받은 소련군은 북한에 진주하고 미군은 남한에 진주하여, 굶어 죽어가던 남북한 국민들에게 우선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의 북한 지도자는 사실상 조만식이었으며 그분은 일제치하에서 조선물산장려운동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당시엔 기독교 장로로서 교인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그분은 가난한 평민 출신 소년으로 양반가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당시의 머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안주인들 요강 닦아 주는 일이었지만 조만식 선생은 자청해서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양반가의 여자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지만 반대로 동료 머슴들로부터는 상당한 미움을 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덕택에 결국, 그분은 양반가 아낙들의 천거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서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 유학까지 마치고 민족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 아부란 아낙들 요강만 잘 닦아도 되는 쉬운 것이다 조만식 선생의 출세 배경을 잘 모르던 그분의 제자 중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소년 시절 아주 가난한 가정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미국 유학까지 하시게 되었습니까?”라는 이 질문에 대하여 조만식 선생의 답변을 간단명료했습니다. “그야 요강만 잘 닦으면 되는 쉬운 일이지...”라고 핀잔을 주어서 질문한 제잗ㄹ이 어리둥절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배경으로 본다면 파렴치한 짓이 아니라면 양반가의 아낙들 요강을 닦아주는 아부도 할 수 있다는 성격을 엿볼 수 있으나, 일본의 회유를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로써 대의명분을 중요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요강 닦았다는 측면에서 보면 어차피 북한지역을 소련이 점거했다면 나라가 분단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만약 그분이 조국의 분단을 예견치 못했다면 지도자로서의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굳이 그분을 찬양하고 싶다면 당시 사실상의 북한의 지도자로서 소련을 밀어내고, 남한 지도자에게 북한을 온전히 넘겨주기 위해 북한 지역을 장악하려고 소련군 진주 환영 연설까지 했다고 우길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문제는 후세 사람들이 함부로 예단하여 평가하기는 상당히 미묘한 면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조만식 선생은 김일성과 끝까지 권력의 축을 놓고 대립했으며. 그분의 비서관들은 대세가 불리하다며 선생께 월남을 권유했으나, 그분은 끝까지 북한에 남아 있다가 김일성 일당에 의해 숙청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 김일성은 독립투쟁가 출신이며, 가짜영웅 박정희는 일본군 출신이란 부담감 때문인지? 김일성을 비난하기 위해 공산 정권의 쟁탈 관계였을 뿐인 조만식 선생을 민족적 영웅으로 미화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비서관들조차도 대부분은 공산치하를 피해 월남하는데도 불구하고 혼자만 북한에 잔류한 이유 중 하나는, 소련군 환영대회에 연설까지 한 자신의 행태를 민망히 생각하여 차마 남한에 오기를 꺼렸거나, 아니면 소련군을 환대해 주었는데 설마 자신을 해치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세상이 바뀌다 보면 김일성을 누르고 북한 지도자로 부상할 수도 있다는 속셈으로, 소련의 비위를 맞춰 보려고 그분의 지론인 요강만 잘 닦아도 출세할 수 있다는 소신이 작용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일성 치하에서 희생된 분이지만, 그 행위를 통틀어 영웅으로 추앙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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