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선 "기타는 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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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 "기타는 또 다른 나"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3.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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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지는 상황….
'가왕' 조용필(63)이 이끄는 밴드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52)이 데뷔 36년 만에 첫 솔로 앨범 '어나더 드리밍'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비유했다. 과장인 듯하나 수긍할 수 있다. 디지털싱글 세상에서앨범에 실린 12개 트랙 모두 연주곡이니 할 말 다했다.
"타고다니는 차까지 다 팔았어요. 하하하. 찍은 2500장 다 판매를 해도 남는 것이 없죠. 그런데 누군가를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타리스트라고 하면 가수에 의해, 가수를 위해, 또는 필요에 의해 반주하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남기면 꼭 의미 있는 앨범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고 흥분도 된다. 그런데 "성격 탓인가, 아쉬움이 크다"는 고백이다. 그는 매우 꼼꼼하고 세심하다. "공연이 기분 좋게 끝나도 아쉬웠던 부분이 계속 생각나요. 뒤풀이가 끝나고 집에 가서 잠이 들었다가도 깨면 전날 공연했던 것을 다시 연주해봐요. 앨범은 오죽하겠어요. 허허허."

'국가대표' 밴드인 '위대한 탄생'에서 활약하며 최고의 무대에 올랐다.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은 물론이고 2005년에는 평양에서도 연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았고, 그런 마음이 '어나더 드림'으로 승화됐다.

포효하며 질주하는 첫 트랙 '뱀'을 필두로 밝은 분위기의 '희망가', 여러 동물의 울음소리를 삽입한 '동물농장' 등 분위기는 다르지만 기타의 생명이 저마다 '살아있는' 곡들이 제자리에서 꿈틀거린다.

블루스풍의 '사운드 오브 문(Sound of Moon)'은 그가 20년간 모신 조용필을 위해 쓴 곡이다. 부제로 '3.21'라는 암호를 달았으나 '위대한 탄생' 팬들은 단숨에 해독했다. 조용필의 생일이다.

기타리스트 이중산 엄인호 이성열 김마스타를 비롯해 드러머 장혁, 베이시스트 신현권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함께한 9분51초 가량의 블루스풍 잼 세션도 인상적이다. 끝 트랙인 만큼 지난 14일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다.

1년 간 작업한, 각 곡에 어울리는 화보도 인상적이다. '뱀'에서는 구릿빛 탄탄한 상체가 돋보이고, '사운드 오브 문'에서는 세련된 도시 야경의 낭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제가 아이돌도 아니고, 팬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가사도 없는데 제목만 던져주면 너무 팬들에게 무성의할 것 같아서 이미지를 전달한 것이죠."

최희선의 완벽주의는 화보에서도 묻어난다. 한정판으로 만든 1000장에 수록된 화보 1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전부 다시 찍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음반을 사는 팬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번 앨범에 대한 조용필의 반응은 그에게 큰 관심사였다. "형님이 잘 칭찬을 해주시지 않은 성격인데, 다행히 칭찬을 해주셨어요. 이런 저런 조언도 많이 해주셨죠. 하하하."

그러나 보컬 없이 앨범을 낸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배철수 형을 비롯해 지인들이 펄쩍 뛰었어요. 노래를 꼭 넣어야 한다는 것이죠. 김범수, 박상민, 김태우 등 후배들이 도와준다고 나서기도 했고. 그래도 일단은 제 꿈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절벽에서 떨어지더라도 말이죠."

록, 블루스 등 장르가 다양하다. "자기 색깔도 중요하지만 기타리스트들이 평생을 가려면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 해요. 다양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어요. 좀 거창하지만 이 앨범이 후배들에게 교본 같은 느낌을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

악단에서 기타를 맡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네 살 때부터 기타를 가지고 놀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기타를 만지기 시작했다. 5학년 때 196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록밴드 '벤처스'의 곡들을 거쳐 중학교 때 1970년대 록계를 양분한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을 마스터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이태원과 무교동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마침내 1993년에는 위대한탄생에 합류하게 됐다. "고민을 할 겨를도 없었죠. 축구로 치면 국가대표가 부르는 것인데…. 하하하."

앨범 발매를 기념, 생애 첫 단독 콘서트도 연다. 4월13일 오후 6시 서울 이태원동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어나더 드리밍'을 열고 팬들과 만난다. 이번 공연을 위해 홍대앞에서 활동 중인 인디 신인들로 구성된 팀을 꾸렸다. 후배들과 교류하고, 이들에게 새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2부로 나뉘는 최희선의 콘서트는 1부에서 '어나더 드리밍' 수록곡, 2부에서는 자신과 팬들이 좋아하는 곡을 재해석해 들려준다. 영상사이트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그가 미국 가수 프린스(55)의 '퍼플레인'을 재해석한 연주도 들어볼 수 있을 듯하다.

데뷔 36년 만에 첫 솔로앨범을 냈지만 후속 앨범은 늦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1960년대 히트곡부터 최근의 K팝까지 중 명곡을 선별한 리메이크 앨범 등을 계획 중"이라고 귀띔했다.

세계적인 음향회사 '클레어 브라더스'에 기타가 걸려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최희선은 후배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보람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크죠. 내가 힘이 있을 때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큰 도움도 줄 수 있고." 남자 1명 여자 1명을 제자로 키우고 있다. "스펙을 갖춘 친구들이에요. 인성도 좋고.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친구들이죠."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기타를 잘 치려고 하기보다 음악을 잘하라"는 것이다. "기타를 손으로 치려고 하면, 오히려 안 돼요. 물론 기타를 처음 배울 때는 손으로 익혀야 하죠. 하지만 결국에는 내 감정을 손으로 표현할 뿐이죠. 감정을 음악으로 잘 표현하려고 노력하면 실력은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희선에게 기타는 또 다른 자신이다. "제 느낌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저"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주 탓에 조금씩 손에 무리가 오고 있다. 아침마다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풀어주는 등 꾸준히 관리 중이다. "연륜이 쌓이면 연주가 더 끈적해지고 유연해지며 노련해지는 면이 있죠. 그런데 리듬감이라는 것은 나이가 있어요. 지금도 매일 연습을 하고 있는데 발전시키려고 한다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한 것이죠."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지 못하면 더 이상 기타를 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팬들에게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그전까지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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