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운석]심상치 않은 북한 민심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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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운석]심상치 않은 북한 민심 이반
  • 광주타임즈
  • 승인 2016.05.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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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광주타임즈]한식날은 불을 피울 수 없게 돼 있어 미리 지어놓은 찬밥을 먹은 적이 있다.

불을 못 피우게 하는 전설적 이유는 충신(忠臣) 개자추(介子推)의 원통한 죽음을 공감하고 애도하기 위해서 생겨난 습속으로 돼 있어서다. 고대 중국 진나라 임금 문공(文公)이 19년 동안 망명 방랑생활을 할 때 유일하게 따라다니며 보필한 신하는 오로지 개자추 한 사람뿐이었다.

임금님이 굶주릴 때는 허벅지 살까지 에어내어 목숨을 잇게 해준 것으로 문헌에 적혀 있다. 한데, 문공이 다시 나라를 찾았을 때 많은 사람을 등용하면서 오로지 개자추만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개자추는 금전산에 들어가 숨어버리고, 그때야 잘못을 뉘우친 문공이 사람을 시켜 산속을 찾아 헤맸으나 나타나지 않기에 마지막 수단으로 그 산에 불을 질러 스스로 걸어나오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한데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나무 한 그루를 부둥켜안고 타죽었다. 그래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여 찬밥을 먹는 것으로 개자추를 애도하는 한식 민속이 발생했다 한다.

나의 의사나 주장이나 불평불만을 이렇게 자학으로 내향 처리하는 개자추의 죽음이 우리에게는 공감이 가고 또 애통해지기도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외향 처리하는 서양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동양사람, 특히 한국 사람에게 억세게 강한 피해자 의식, 곧 개자추처럼 스스로 피해자로 만들어 그로써 야기되는 남들의 공감과 동정에 응석을 부리는 심리를 ‘개자추 컴플렉스’라 하여, 옛날 선비들이 정사에 뜻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유배길에 올라 가시덤불 둘러놓고 그 속에 들어앉아 자학하는 습속도 그 같은 심리다.

그런데 권력자는 이반과 배반을 가장 두려워한다. 민심이 떠나고, 충성하던 내부자가 등을 돌리면 종말을 보듯 떤다. 이반과 배반은 권력자에게 재앙이다.

하지만 역사를 놓고 보면 다르다. 그것은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힘이다.

하나 예를 보자. 장수왕 63년(475년) 9월의 일이다. 3만 명의 고구려군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백제 위례성을 공격했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던 큰 일이다.

7일 밤낮 성을 공격했다고 한다. 성문 앞에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 불을 질렀다니, 그 공포는 얼마나 컸을까. 늙은 왕은 왜 공격을 했을까. 백제의 평양성 공격에서 숨진 고국원왕을 조롱하니 장수왕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위례성은 왜 무너졌을까. 성을 빠져나간 백제 개로왕, 재증걸루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그는 고구려에 귀순한 백제의 변자이었다. “말에서 내려 절을 한 뒤 왕의 얼굴에 세 번 침을 뱉고 포박해 아차성 아래로 보내 처형했다”고 한다. 그 싸움에는 귀순한 다른 백제 변장고 이만년도 있었다.

왜 백제에 등을 돌렸나. 돌아선 민심 때문이다. 고구려 첩자 도림(道林)의 꾐에 빠져 성을 쌓고 화려한 궁궐을 세운 개로왕. 국고는 텅 비고 백성은 곤궁에 빠졌다고 한다. 민심이 떠난 마당에 무엇으로 신하의 충성심을 이끌어낼까.

북한 정찰총국의 대좌가 망명해 왔다고 한다. 대좌는 한국의 대령에 해당한다. 하지만 권력기관의 대좌이니 계급만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이전에도 황장엽이나 고영환 같은 고위 인사가 망명한 일은 있었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민심 이반이 고개를 쳐들고 있으니. 중국 또는 동남아에서 탈출했다는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 한 종업원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 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통했으며,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김정은 체제에 등돌린 민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반과 망명, 북한은 막을 수 있을까? ‘고난의 행군’, ‘70일 전투’…, 무엇이든 하고자 할 테지만, 왜 낡은 구호로만 들릴까.

시 인 고 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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