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석 시인]탄핵안 가결은 종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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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 시인]탄핵안 가결은 종언인가
  • 광주타임즈
  • 승인 2016.12.2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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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광주타임즈]국민에게 봉사함으로써만 국민을 통치할 수 있다. 고로 지도자란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 했다. 한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지 못하고 나라와 국민을 나락으로 내몰더니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로 정치인생의 벼랑 끝에 섰다.

그의 몰락은 박정희 시대의 실질적 종언이라는 역사적 함의를 지닌다. 개발독재가 정당화됐던 1960, 70년대의 국정운영 패러다임을 유통기한을 넘겨 21세기에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전됐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은 아버지 시대에 갇혀 있었다.

임계치에 이른 그 한계가 이번에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박정희 정권이 10·26사태로 무너졌듯이 박근혜 정권도 최순실 게이트라는 헌정사의 사변으로 중도에 막 내릴 공산이 커진것은 기구한 숙명이다.

아버지와 딸이 모두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했으니 자업자득이나 국민에게 남긴 충격과 상처가 깊다. 박정희는 그나마 산업화를 일궜지만 박 대통령은 이렇다할 치적도 없이 허망하게 물러나게 생겼다. 국정 역사 교과서에 아버지 업적을 돋보이게 담아 헌상하고자 하는 딸의 효심을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던 아버지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하지만 초헌법적인 통치행태, 관료와 기업이 무조건 ‘윗분’ 뜻을 받들어야 하는 절대적인 권력 집중, 정경유착과 음습한 ‘내부자 거래’는 바뀐 게 없다. 물려받지 말았어야 할 유산이다. 아버지가 핵심 측근의 총탄에 쓰러진 뒤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에 치를 떨었지만 그 역시 비선 실세의 호가호위(狐假虎威)가 탈이 나면서 임기를 채우기 어렵게 됐다. 동생 근령, 지만씨가 뒤늦게 정치에 뛰어들어 ‘가문의 명예’를 회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다시는 어느 누구도 박정희 향수를 자극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젠 국민의 애증이 교차하는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화국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박 대통령과 그를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나라를 말아 먹은 최순실 패거리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고는 국민이 ‘이게 나라 맞다’는 위안을 결코 얻을 수 없다. 이렇다보니 박 대통령이 이제 물러나야만 희망이 보일 것 같다는 것이다.

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촛불 민심이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까지 이끌어낼 동안 촛불 근처에서 곁불을 쬔 것 말고 실제 야당이 한 일이 무엇인가. 이제라도 국회가 나서서 한 번만이라도 좋은 정치로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 국회가 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국민은 당신들도 기득권 집단과 다름없다며 심판에 나설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탄핵 찬반으로 갈린 민심이 다시 촛불 시위로 헌재 압박에 나설 것이 우려되지만 헌법과 법을 위반한 잘못을 바로잡겠다면서 또다른 헌법위반과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다. 법치주의에 입각한 성숙한 민주주의,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거리의 정치를 국회가 완성해내야 한다.

헌재는 최장 6개월까지 끌 것이 아니라 집중심리를 통해 조속한 결론을 내기 바란다. 대선 준비에 들어갈 정치권은 경선과 후보 검증, 선거운동에 이르기까지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5년 단임제 중심의 87년 체제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을 도모할 수 있는 개헌 논의도 불가피할 것이다. 야당과 일부 대선 주자들이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개헌 논의조차 거부하는 것은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단견이자 국가 개조와 발전을 가로막는 욕심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직 후 소집한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헌재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을 밝혔다. 어떻게 대통령직을 마무리하는 것이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길인지 박 대통령이 깊이 숙고해주기 바란다. 박 대통령 탄핵이 빚은 국정 공백과 혼란을 나라와 국민이 한 단계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이 나아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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