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의 근대사)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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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의 근대사) (제1회)
  • 광주타임즈
  • 승인 2018.09.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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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광주타임즈]민주 평화 노인회 전남 무안군지부 회장 문경주=※이 책은 박근혜 정권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었던 2014년도에 출판했으며 당시는 박정희 실명으로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가짜 영웅이라는 별칭으로 출판되어 2018년 현재도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책의 줄거리를 변형시켜 연재합니다.

박정희는 독재정치로 인권을 억압한 측면이 있지만 경제를 살렸으니, 진짜 영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완용은 어떨까? 조선은 이씨 왕조의 영화를 위해 鎖國政治(쇄국정치)까지 하면서 양반들의 세력을 이용하여 상민들을 노예로 부리는 인권 유린의 악행 정치를 해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올곧게 지켰다면 달리 변명을 하겠지만 결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며 조선 말기 내각에 한 사람이었던 학무대신 이완용은 이유야 어떻든 조선을 일본에게 바치는데 주도했고 일본의 식민통치로 인해 사실상의 노예와 같았던 조선의 상민들이 드디어 인권을 찾았다. 그렇게 본다면 상민들은 오히려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할 텐데…기득권을 못 가졌던 상민 처지의 빈민들일수록 친일파를 미워했으며, 그 때문인지 좌파 또는 진보세력으로 분류된다. 그 반대로 기득권을 가졌던 지배층 대부분은 보수라는 탈을 쓰고 사실상 친일파들을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이완용은 역사상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썼다. 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조선 말기에 학무 대신으로 있었던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 5적들에겐 세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첫째, 이미 해산된 조선 군대를 재정비 전투력을 복원하여 일본과 전면전을 벌이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막강한 전투 장비와 잘 훈련된 군대 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무기체계가 현대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물리친 해전 강대국이었고 육군 또한 강력한 군대였다. 두 번째로는 맨주먹으로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을 때까지 버티는 방법이 있었다. 세 번째 선택이 한일 합방 조약에 서명하고 일본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으며 이완용은 결국 세 번째를 선택했다. {을사 5적은 1905년 망해가던 조선을 일본이 침략해 왔을 때 조선국의 항복 선언에 해당하는 을사 늑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조선 조정의 대신 가운데 한,일 합방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을 말한다. 즉, 朴齊純(박제순), 외부대신), 李址鎔(이지용), 내부대신), 李根澤(이근택), 군부대신), 李完用(이완용), 학무대신), 權重顯(권중현), 농상부대신)을 통칭함} 폐 이론하고 역설적으로 이완용이 침략자 일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혈서를 써야 할 대상도 없어지는 것이며, 일본 침략 세력들에게 협력한 경력으로 해방된 대한민국에서도 권력을 잡았거나, 돈을 번 재력가들인 보수 세력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마땅히 이완용도 영웅이어야 하며 그의 후손도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박정희는 영웅이고, 보수 세력이 탄생하도록 침략국을 끌어들였던 이완용은 역적이 되는지를 생각한다면 보수와 진보의 개괄적 개념은 自家撞着(자가당착)빠지게 된다.

이들의 매국 행위에 대해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대한 제국의 국력을 키우지 못한 위정자로서 책임이 있었을 뿐! 조선은 이미 국력이 소진되어 침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시기에 동남아시아의 거대 국가였던 인도는 조선보다 월등하게 많은 인적자원과 지하자원도 풍부했지만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물론 저항을 안 한 것은 아니며 목숨을 걸고 항쟁했으나, 결국은 신식 무기를 들고 침략해온 영국 군대의 막강한 총탄에 조국을 지키던 인도의 피 끓는 젊은이들이 맨손으로 맞서며 가슴으로 총탄을 막다가 쓰러져 감으로서 인도의 애국청년들을 처참하게 잃어가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항전 의지를 잃고 영국군대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조선에서의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들은 한일합방 이란 조건으로 민족의 피를 지불하지 않고도 상당 부분의 경제적 혜택을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선 스스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경제개발을 “이완용이 해냈으며 그 것은 일본이란 깃발을 펄럭이며 달려가는 열차에 조선이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처지일지 라도 결과적으로는 굶어 죽어가는 가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조선을 일약 개발도상국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얻어온 것은 사실이며 그 인물이 바로 이완용이기 때문에 그가 역적으로 취급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누가 어떤 주장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럴수도 있다는 긍정 논리와 매국적 논리라는 비난의 논란을 일으키지만 대부분 친일파들의 주장이 그럴듯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현혹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대 당장엔 참혹한 전쟁을 피해 조선 민중들의 피를 아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친일파가 아닌 조선인들은 노예와 같은 처지로 전락하여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끌려 다니며 전쟁 노무자로 굴종 당하다가 죽어가는 가하면 탄광으로, 또는 군수품 생산 공장 노무자로 끌려가서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인지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란 이름으로 끌려가서 일생이 망가진 사람들은 차라리 죽음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떠 올린다면 당사자들에겐 평생을 씻을 수 없는 인간 지옥의 처절함이었으며 태어나고 정들었던 조국을 떠나 가정이 파괴 되면서 낯 설은 동토의 땅 만주벌판을 누비다가 쓰러져 간 이름 모를 한 민족의 수난사, 그 처참한 민중의 고난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침략자들이 조선 땅의 식민 수탈을 목적으로 할당 해준 일본의 국가 예산 10% 정도를 던져 주었지만 결국 그 자금은 조선의 자원을 수탈해가기 위한 비용으로서, 우리 강토를 파 뒤집어 농사지은 조선의 식량을 가져가는 동시에 골동품 금붙이 등 광물자원들을 노략질 해가기 위한 도로 철도 항만 건설 따위에 쓰였으며 우리 민족의 생명 그리고 영토와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재원이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일부분의 친일파들이 혜택을 봤을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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