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산들 지난세월은 하루살이와 같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늙은 육체와 병든 몸과 마음뿐이다. 백년을 사는 시대가 왔다고 하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얼마나 값진 시간들이였는가 하는 것이다. 하루를 백년처럼 귀하고 소중하게 살았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수만 갈래의 방법이 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하여 그 결과치가 진정 나를 위하고 사회의 공적임무를 다하는 일이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인간의 삶의 형태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측은지심과 역지사지의 마음이 동하여 행했다면 진정 인간의 본연의 행위를 다하려했음일 것이다. 잘살아 보겠다고, 성공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간의 본형이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형태의 인간들이 탄생한다. 오직 나만을 위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면 사회의 기생충과 같은 생각이 든다. 어찌하면 같은 족속들의 피를 빨아 짓밟고 일어설까 전전 긍긍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런 인간들의 삶은 결국 이 생을 다할 때 한으로 남아 눈을 감지 못한다.
저 사람은 마음은 좋으나 남은 것은 없어,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지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사회에 기여한들 뭐가 남는 것이 있어야지~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사회는 더불어 공존하고 공생하는 삶이다. 이런 기본적인 인간 사회 생활의 규범을 어기면 남는 것은 자신은 물론이요, 사회는 병들어 버린다. 그래서 믿음이 없어지고 불공정한 세상이 판을 치며 부정과 부패가 세상을 흔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필자는 자주 바른 인성을 이야기한다. 수백억의 재산가보다, 높은 학식의 엘리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모든 것은 바른 인성위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이 되었을 때 사회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행복한 사회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
육십 오년의 세월동안 나라는 존재는 무엇을 위해서 뛰어 왔던가?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생의 졸업장을 받은 청천 병력 같은 선고를 받고 편안하게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다 그래, 바로 이게 삶이였어라는 생각을 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왜 제가 먼저 졸업장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살아졌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의심하는 운명이라는 명제 아래 우리가 존재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알고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해야 하고 미안하고 죄송스러움이 앞선다. 부족한 나를 이끌어 주었던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새삼 다시 살아나는 것도 참 좋은 분들과 함께 세상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부족한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하기를 원했던 분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직 나눔과 봉사의 정신으로 사회에 봉사했다. 그분들의 일면을 보면 대부분 참 가정을 이루어 냈다. 참 가정을 이룬다는 것, 참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은 효가 그 주이심에 있어야한다.
옛 선인들은 효는 만행의 근본이다고 말했다. 효를 바탕으로 한 가정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내면 그 사회는 바르고 정의로워진다. 행복한 가정에서 배우고 자란 자녀들이 사화에 나갔을 때 정직하고 성실하며 웃 사람을 공경하는 행복 바이러스가 세상에 널리 퍼져 살맛나는 세상이 이루어진다. 효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에 공헌도 , 국가에 충성도 친구간의 신의도 없는 불쌍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런 사회도 불행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한가지 효를 중심으로 참 가정을 잘 일궈내어 바른 인성을 통한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 덩어리로 뭉쳐진 고깃덩어리다. 탐욕이 우리의 진정한 삶을 방해하고 사회의 정의마저도 부정하며 ‘내로 남불’이 정의인척 망각하는 사회를 만드어 버린다. 우리는 항상 겸손을 몸네 달고 다녀야한다. 나라는 인간의 소중하고 귀함같이 모든 인간들은 소중하고 귀하다. 사ㅇ대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면 자신도 귀하게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만이 대접받기를 원하고 자신보다 부와 스펙이 낮으면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것은 안된다.
서로가 이해고 배려하고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귀하게 여긴다면 모두가 평등한 사회 속에서 서로 대접받는 행복 사회가 될 것이다. 을미년 오월 십이일에 나서 세상 구경을 하면서 육십 오년동안 나는 얼마만큼이나 자신을 수행하며 참 나를 발견하고 내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일했던가 생각해본다.
저 높고 푸른창공의 구름은 말없이 흐르고 산천대지는 묵묵히 자신을 지키며 천만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있는데 우리네 인간은 하늘의 명이 다하면 세상을 떠나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법칙 속에서 다시 세상을 구경 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