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였던 김씨가 흑자를 접한 것은 대학 시절 동아리 산악부와 태백산맥 종주 중 화전민 터에서 발견한 검은 도자 파편이 계기가 됐다.
검은 도자기에 대한 열망으로 졸업 후 입사한 대기업을 나와 세라믹 회사의 공장장이 돼 흙과 불에 대해 연구했다.
흑자가 발전된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했지만, 흑자의 비밀은 풀리지 않았다.
1989년 자신의 고향이자 조선 중기 양질의 흑자 산지인 가평에 가마를 짓고 검은 빛깔을 내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그는 지금 다양한 검은 빛깔과 무늬를 요리하고 있다.
김씨는 고려 이후 한국에서 맥이 끊긴 흑자의 유일한 도예가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 유명로 가평요의 요장(窯場)에서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한 자인(28), 서울대 조소과에 재학 중인 경인(24)과 함께 검은 도자기를 빚고 있다.
딸들은 유년시절부터 배낭을 짊어지고 흙을 채취하기 위해 아빠와 산을 누비며 함께했다.
흑자는 1300도 이상 고온 소성과 예민하고 미세한 불의 변화로 만들어진다.
온도에 따라 도자의 표면은 달라진다. 안개같이 깜깜했다가 오색찬란한 영롱한 빛으로 바뀌기도 한다.
힘겹고 고된 작업이지만, 그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드물다. 대중에게도 흑자는 생소하다.
그가 5일부터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도 대중에게 흑자를 알리기 위함이다.
‘흑유명가, 가평요-검은 달항아리와 그 이후’란 제목으로 마련된 전시에는 달항아리와 차도구, 다완, 생활자기 등 70여점이 나왔다.
김씨는 ‘공작흑유대호’ ‘흑유달항아리’ ‘요변천목다완’ ‘공작흑유찻잔’ 등을 내놨다.
그림과 조각,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큰딸의 청자하이힐과 작은딸의 검은 사과 등도 볼 수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