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 록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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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 록펠러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02.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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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최수호 =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은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신문을 펼쳐보고 헤드라인에 ‘알프레드 노벨 사망’에다 부제로 “죽음의 사업가이자 파괴의 발명가인 다이너마이트의 제왕이 어젯밤 사고로 죽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깜짝 놀라 신문사에 항의하여 사과를 받아내고 노벨 사망은 오보라는 정정기사를 실으면서 그 오보기사 사건은 수습이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죽었다는 기사를 읽고도 어느 누구하나 슬퍼하는 사람이 없고 오보를 접한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만들었던 사람이 드디어 죽었구먼!”하는 핀잔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노벨은 이런 현실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죽고 나면 세상은 ‘죽음의 사업가이자 파괴의 발명가’로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 큰 재산을 모아논들 죽어서 오명을 얻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화두를 앞에 두고 자신이 죽고 난 후의 시점에서 자기 인생과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자신이 죽고 나면 쌓아 논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꿈이로구나! 내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자각을 통해 전 재산을 인류를 위해 환원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늘 날 최고의 명예를 자랑하는 ‘노벨평화상’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 갑부였던 록펠러는 물질적 욕망의 화신이어서 재산을 늘리기 위해 무자비하게 경쟁사들을 합병하고 남아도는 인력은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리곤 했다.

그 결과 그의 석유화사인 스탠더드오일은 미국 석유생산의 91%를 장악할 정도였다.

그런데 47세가 되던 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소화가 안 되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였다.

지독한 탈모증에 시달리면서 50대 중반에는 온 몸의 털이 몽땅 다 빠져 수염과 눈썹은 물론 속눈썹까지 사라져 80대 노인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로부터 “이런 상태로는 1년을 살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말을 듣고 괴로워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난 죽어 가는데 도대체 내가 소유한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돈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되면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면서 “하느님! 저는 지금까지 탐욕덩어리였습니다.

제 욕심만 채우며 살았습니다.”고 외쳤다. 그리곤 그때부터 끊임없이 모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베푸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뉴욕에 유명한 리버사이드교회를 짓고 재산을 몽땅 쏟아 부어 가난한 사람들과 인류번영을 위한 록펠러재단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식욕이 돋고 수염도 자라고 눈썹도 났다. 그리고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던 그는 100세에서 26개월 모자란 어느 날 미소를 머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인류사적인 거장 노벨과 록펠러의 삶을 돌아보면서 모든 인간은 저마다 맡은 배역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각자의 고유한 겉모습으로 인생이라는 연극을 한다.

그리곤 인생이라는 연극도, 배역도 모두 끝나면 지위, 권력, 명예, 잘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 돈 등 배역을 수행하는데 필요했던 모두를 잠시 빌려왔던 자연에 되돌려주고 우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돈이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이지만 진정한 사랑과 자비를 담아내는 돈은 ‘나의 영혼의 가치’를 지니며, 돈이란 인생이라는 명품연극을 위한 소품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래서 인생이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사람은 모두 다 아름답고 저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다.

각자의 겉모습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임시로 씌워진 가면이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겉모습에 취해 자신의 잠재능력을 보유한 깊은 속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외형을 탓하기만 한다.

따라서 지위, 명예와 같은 겉모습에 집착하고 있다면 내면이 비어있기 때문임을 자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못생긴 외모나 불행한 환경은 자신의 속 깊은 모습을 들여다보라는 우주의 신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외모든 환경이든 겉모습에 불만을 느끼면 일단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이런 환경에 이 세상에 내려왔을까?”라는 자문을 하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다보라.

그러면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던 물음에 대한 해답이 반드시 떠오르면서 못난 외모나 불편한 환경은 인생배역을 멋지게 수행하라는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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