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의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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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의 시원
  • 광주타임즈
  • 승인 2015.08.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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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논설위원 최수호=우리는 대체로 이상적인 삶을 꾸려가기 위해 늘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 자기변신을 꽤하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삶의 모습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지금과 다른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자기불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자기 삶의 이방인으로 여겨서 자기 인생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여전히 자신을 대하는 자기혐오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삶의 현실은 주변으로부터 성공하라고, 똑똑하라고, 돈을 많이 벌어 남보다 뛰어나 보이라고, 능력 있는 자가 되어 힘을 과시하는 매력을 갖추라고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으므로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되어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세상의 누군가 서로의 경쟁결과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겨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주변의 욕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하는 수치심이 두려워서 자기 약점을 부끄러워하고, 거부당하는 치욕에 자기혐오를 느끼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주변과 분리되어 있는 이방인 같다고 여기곤 어떤 집단이나 무리에 소속되어 자신의 위상을 보장받기를 애타게 갈망한다.

하지만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비하해버리곤 혼자이기 일쑤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은 태어남을 통해 사랑과 의식이라는 참된 본성을 깨달을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신성(神性: 전지전능하다는 신과 같은 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 본연의 지혜와 자비를 깨닫고 실현하기 위한 영적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원죄’를 범함으로써 신으로부터 버림받아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모든 인간은 원죄로 쫓겨난 근본적인 결함으로 인해 사랑받을 지위도, 행복할 자격도 상실해버린 존재로 인간을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죄로 인해 절대자의 품안에서 쫓겨난 자들인 인간은 영원히 편안한 인생을 누릴 수 없으므로 다시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려면 창조주인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최후의 심판을 받아서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자신을 구원받도록 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 스스로 자초한 원죄의 결함을 극복하려면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절대자의 심판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니 인간이 다시 낙원에 들어가려면 이미 근본적으로 지녀버린 원죄에서 벗어나야 하고,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을 속박하고 통제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따라서 이런 믿음에 따른 삶은 인간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인간 스스로를 규제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이 절대자의 범주에 속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니 창조주로부터 버림 받게 된 원죄의 결함을 신봉하는 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이루어온 모든 것들은 오직의 신의 뜻에 의한 결실일 뿐이다.

그런데 인류의 정신을 지배한 유럽역사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원죄를 인간에게 덮어씌운 절대자인 창조주의 대리인으로 교황을 내세워 신의 이름으로 원죄의 굴레를 둘러쓴 인간들이 대항하지 않고 절대 순종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상이 강화된 교황은 우매한 백성들을 지배한 권력자의 지위까지 인정하게 함으로써 이들까지도 절대 순종하도록 하는 믿음을 이끌어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신에 대한 절대 복종의 대가로 ‘원죄’라는 근원적 결함을 극복하여 영생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의도적으로 확산시켜왔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절대자인 창조주를 배신한 대가로 모든 인간에게 ‘원죄’라는 원천적 결함을 지니도록 규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창조주의 절대성을 빙자하여 인간이 인간을 인위적으로 통치하고 지배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열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를 꾸준히 해보면 누구나 신과 같은 품성을 지닌 내재적 가치인 신성(神性)이 자신의 내면에 상존하는 존엄하고 준엄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초능력의 힘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 경탄하는 환희심을 갖게 된다. 그러니 권력지향적인 자들이 근원적 결함처럼 ‘원죄’를 덧씌워 맹종을 불러들이는 작태는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허구적 사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기 삶이 자기 의지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자신을 넘어선 어떤 절대자의 훼방으로 여겨서 자기혐오에 빠져버리는 연약한 습성을 보이곤 한다. 모든 인간은 무한한 잠재능력의 소유자임을 굳게 믿고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성공한 행복을 누리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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