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석 시인] 눈 귀 앞에 ‘진실 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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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 시인] 눈 귀 앞에 ‘진실 금지법’
  • 광주타임즈
  • 승인 2016.11.0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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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광주타임즈]정치인의 진실은 중상모략이요, 종교인의 진실은 신의 모독이다. 그런가하면 잉크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진실을 덮을 수 없다. 괴테는 우리는 속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한데 진실 금지법도 다 있었다. 조선시대 4대 사화(士禍)로 희생된 선비가 500명에 달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기축옥사에선 1000명 이상이 당했다. 호남 지식계가 쑥대밭이 됐다는 정도다. 정여립 사건은 조작 가능성 때문에 아직도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무참하게 처형됐다. 반주자학적 이설들은 온갖 명분으로 공격을 당하고 왕따 당하면서 조선 사회는 서서히 죽어갔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는 없었다. 주자학적 교리를 조금이라도 달리 해석하면 바로 ‘사문난적’이 되었다. 송시열은 “주자가 모든 학문의 이치를 이미 밝혀놓았는데 감히 자기 의견을 내세워 억지를 부리니 진실로 사문난적”이라며 윤휴를 몰아붙였다.

윤휴는 결국 유배지에서 죽고 말았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 민주화의 시대조차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지구촌 이슈라는 기후변화 논란도 그중의 하나다. 그것도 미국에서의 일이라면 놀랄 만하다. 근본주의 환경론자들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입을 특별법까지 만들어 봉쇄하려고 한다. ‘기후변화 회의론’은 기후변화와 위험이 과장되었거나 오류일 수도 있다는 일체의 주장을 말한다.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회의론자의 입을 막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나와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 진영의 표현의 자유를 막아선 안 된다”는 반론이 드세 지면서 일단은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최근 야권에서 제기한 ‘5·18특별법’도 그런 반자유의 대열에 동참할 모양이다. 국민의당에 이어 더불어 민주당과 정의당까지 나서서 징역 5~7년짜리 처벌법을 추진하고 있다. “5·18의 가치에 더는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 법안의 주된 내용이다.

일각에서 북한 간첩 개입설까지 제기하자 이른바 민주화 진영에서 분노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5·18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해석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과잉 입법에다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모두를 정면에서 침해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학자의 책에 ‘삭제명령’의 칼날이 날아든 것도 그렇다. 정부의 공식적 정의와 다른 주장을 무조건 금지시키는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검찰은 결국 박유하 교수를 기소했고 법원도 삭제를 지시했다.

최근의 국정감사에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 권력형 비리 의혹 관련자들의 진술과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이들 의혹에 대한 국정감사에서의 실체규명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우여곡절 끝에 정상화됐지만 각종 의혹에 대한 증인 채택 등을 놓고 여야가 격돌하면서 여전히 ‘반쪽’ 이었다. 반쪽 국감에는 물론 야당 책임도 있었다. 확실한 증거를 대고 정부여당을 꼼짝 못하게 해야 하는데 언론에 나온 내용 중심으로 호통을 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야당의 준비부족으로 결정타를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청와대 여의도출 장소‘를 벗어나지 못한 집권 새누리당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국감에 출석해 증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사는 최순실 차은택 최경희 등이다.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중 1인으로 미르재단 설립에 깊게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차은택씨는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며 미르재단 등의 설립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최순실 씨 딸의 이대특혜입학 등 의혹 규명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야당은 주장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들 증인의 국감 출석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존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사상의 공개시장에서 진리와 거짓이 경쟁하도록 하라”는 유명한 논리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공원의 문을 닫으면서 까마귀들을 모두 가뒀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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